주사실 L선생님
L 선생님은 바르고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FM이었다. 간호사의 정석느낌. 예전에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했다고 했다. 나이 차이는 1살 차이가 났는데 파트장 선생님과 L 선생님과 나는 거의 가족처럼 지냈다.
우리끼리 회식도 많이 했다.
환자가 너무 몰려 바쁜데, 컴플레인까지 많이 받은 날은 너덜너덜 거기다 오버타임까지 하면 빡침 한도 초과. 그런 날은 선생님 저희 밥 먹어요. 너무 열받아서 맛있는 거 먹어야겠어요. 파트장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면 파트장 선생님은 그래 고생했는데 맛있는 거 먹으러가자 하시고 다 계산을 하셔서 우리는 진심으로 선생님의 노후를 걱정했다. 나중에는 이건 저희가 살게요. 하고 계산하기도 했던. 행복했던 지난 날.
L 선생님은 예의바르고 어느 정도 본인이 정한 선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도 빨리 빨리 잘했다. 거기다가 본인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물어보고 배워가면서 하려고하는 적극적인 모습. 그러다 보니 일도 빨리 익히고 배우는 것 같았다.
© pattybphoto, 출처 Unsplash
그러다 L 선생님은 정규직 병동 간호사를 뽑을 때 산부인과 병동에 가게 된다. L선생님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교대 근무를 한다는 의미는 나보다 5-6살 정도 어린 친구들과 체력적으로 밀리고 돌아가는 머리도 덜한 30대가 다시 막내잡부터 시작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였다
그러면서도 데이 이브 나이트 근무를 다해야했으니
아이들도 일을 나서는 선생님의 마음도, 가족들도 매번 바뀌는 근무형태를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경력직이지만 그 이야기는 다시 시작해서 병동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경력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렇다고 완전 무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애매한 경력직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몇 달 정보자료실 주사실 PC에서도 찾아보고 공부하고 가는 열심을 보여주었다. 아이둘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게 얼마나 더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산부인과 병동에 적응 잘했고 인정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 몇 년 전, 파트장 선생님을 통해 아이를 봐주던 시댁이 모두 이사가면서 선생님도 OO으로 이사갔다고 했다.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OO지역 대학병원에서 안과 파트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L 선생님 이야기 마침.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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