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초반부, 아론이라는 어인족의 등장은 꽤 엄청난 임팩트였습니다. 항상 지지않는 천하무적이라고 여겨지던 루피가 고전하는 모습을 아론과의 전투에서 처음 봤어요. 이 아론 에피소드는 나미가 동료가 되는 과정이기도 해서 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요, 적이긴 했지만 나중에 아론이 다시 등장했을 때 조금 반가웠어요. 길거리에서 옛 동창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한편 아론 못지 않게 징베라는 인물도 존재감이 묵직하죠. 어인공수도라는 신기한 무술을 사용하면서 칠무해의 자리까지 가게 되는 징베. 거기에 의리까지 있는 친구라 언제 징베가 루피 해적단에 합류하나 기대하는 사람드링 많았습니다. 아론이 지배와 욕심의 이미지라면 / 징베는 우정, 묵묵함의 상징으로 느껴집니다.
이 둘이 만화 속 세계를 대하는 태도도 사뭇 다른데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세상에 저항한 아론과 인간과의 공존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징베, 이 두 인물을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그럼 이번에도 바로 시작해볼게요.
1. 내 동족을 지켜야만 했다: 아론의 세계관
아론은 인간을 증오합니다. 어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아예 어인들로 구성된 해적단을 만들고, 이후 아론파크라는 어인 거주 지역을 만들어내죠. 이렇게까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것은 과거 천룡인의 노예로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소유물로 무시당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내부에 증오가 쌓였고 그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없으니 자신만의 비뚤어진 신념이 마음속에 생기게 된 것이죠.
어찌 보면 과거의 경험으로 생긴 방어기제이니 이해가 갈 수도 있지만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들에게서 어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을 부려먹고 착취했죠. 그 희생자 중 한 명이 나미였고 이 나미의 삶을 돌려받기 위해서 루피와 아론은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아론은 천룡인과 다른 부류의 캐릭터였고 그 의도 또한 달랐겠지만, 결국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천룡인의 노예 제도를 자신이 똑같이 구현한 겁니다. 본인이 증오하는 대상을 닮게 되었다니 참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2. 원한이나 분노에 휩싸여 살지 않겠다: 징베의 세계관
징베 또한 아론처럼 인간에 대해 달가운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품고 사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지를 피셔 타이거의 삶을 보면서 깨닫게 되죠. 정말로 어인을 위한다면 인간과 공존해야 함을 아론에게 주장하지만, 인간에 대한 증오가 강했던 아론은 이런 징베의 의견을 무시합니다. 결국 피셔 타이거가 죽은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죠.
징베는 계속 편견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힘과 명예를 갖춘 징베이지만 루피를 존중하고 그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죠. 원피스 초반부 아론이 루피를 처음 봤을 때, 루피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됩니다. 그리고 루피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 는 것을 보면서 징베는 진심으로 감동하기도 합니다. 만약 인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루피를 대했다면 징베는 이렇게까지 행동하지 못했을 거예요.
3. 아론과 징베가 내 친구라면 - 아몬드
만약 제 곁에 아론과 징베같은 친구가 있다면 저는 아몬드라는 책을 추천해줄 거에요. 양극단은 서로 끌리기 마련이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정반대의 두 사람은 서로와의 관계를 통해서 성장하기도 하고요. 책 아몬드에 등장하는 윤재와 곤이또한 그랬습니다.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적 반응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덜 발달한 채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무심해요. 반면 곤이라는 캐릭터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버리고 험한 환경에서 자라나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합니다. 그 불안을 지워내기 위해 강한 척을 하며 상대방을 폭력으로 통제 하려고 해요, 마치 아론과 같은 모습이죠.
처음에는 그렇게 제멋대로인 곤이는 윤재를 만나면서 변화해요. 도무지 이해는 가지 않지만 늘 자신의 곁에서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며 편견 없이 자신을 대하는 윤재를 보며 곤이는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해요. 변화는 윤재에게도 찾아왔어요, 곤이를 만나면서 감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게 무엇인지 윤재는 조금씩 알아가요.
원피스 오다 작가가 그래도 아론과 징베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던 것은 이 둘이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무조건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징베처럼 그래도 믿어보려고 하는 마음을 아론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이 작가에게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건 제 지나친 추측일까요.
4. 마무리 : 1-2초로 충분해요.
사실 아론처럼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우리 마음 안에도 그리고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당장 유튜브만 켜도 혐오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죠.
누군가를 이해하기에는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이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여유는 생기는 게 아니라 내 마음먹기에 따라 만들 수도 있는 거라고 해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 '잠깐 내가 그 사람을 왜 미워하지?' '내가 미워해서 나에게 어떤 감정적 이득이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미움으로 인한 상처는 타인에게나, 나에게나 정말 오래가요. 반면 짧은 1-2초의 생각은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해줍니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세상이라면, 잠시 1-2초의 시간으로 마음에 휴식을 주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