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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Jun 09. 2021

나도 모르게 나온 말…

한번 더 죄송합니다.

지 지난 일요일 부산에 교육이 있는 와이프를 동대구역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는데 대프리카 벌써 시작되었나 싶을 정도록 무더운 날씨였다.


시원한 아이스 두유 라테를 마시고 싶어서 집 근처 카페에 들러 테이크 아웃을 하고 그냥 음료만 마시기에는 밍밍할 것 같아서 오래간만에 슈퍼에 들러 과자를 먹어볼까 했다.


과자를 살 때마다 항상 사 먹게 되는 롯데샌드(옛날 사람…) 그리고 짠맛이 그리울 때마다 손이 가는 포카칩 , 더 살 수 있고 더 먹을 수 있었지만 참았다.

과자 맛보다 밥맛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한 손에는 휴대폰 , 또 다른 한 손에는 두유 라테 , 과자 두 봉지는 양팔로 품 안에 넣고 카운터 계산대 앞에 과자를 놓으려고 상체를 기울여는 순간


홀더가 미끄러웠는지 라테 잔이 빠져나와서 왈칵~ 라뗴를 쏟아버렸다….  


회색 계산대 바닥은 라테 색으로 번져 있었고 , 계산대 위중 요한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 도 당연히 축축해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계산대에 있는 직원 분의 아이폰도 라테 색깔로 젖게 만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직원분의 옷이 괜찮은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오~ 미쳤다 , 아이폰 젖었어요 , 빨리 닦으세요”라고 말했다.(사이코패스인가?)


거의 울부짖는 목소리로.. 글로 적으니깐 그 긴박함이 덜 하지만 나는 정말 너무너무 긴박했다.


직원분은 두루마기 휴지로 아이폰 케이스를 벗겨서 닦고 아이폰이랑 계산대 여기저기 닦고 있었다. 나도 죄인이기 때문에 휴지를 달라고 해서 같이 닦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쯤에 직원분의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니깐 계속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이폰 방수되니깐 ㅎㅎ 걱정 마세요~ 그것보다 포스트잇에 찍힌 메모가 더 중요해요”라고 하면서 웃으면서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나도 많은 세월을 산 건 아니지만 사람 표정에 어느 정도의 진심이 있는지 없는지 조금은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 이 직원분의 웃는 표정은 정말 괜찮으니깐 괜찮다는 표정으로 느껴졌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라테를 엎지른 순간부터 슈퍼 가게를 나올 때까지 “죄송해요” , “괜찮아요”라는 계속 오갔다. 내가 나가고 난 뒤에 욕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안 그랬을 것 같고 , 했다고 해도 당연히 욕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마음에 담아주지는 않았는데 , 내가 저 직원이었다면 저렇게 응대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봤다.


표정은 괜찮다고 했겠지만 조금의 짜증은 담겨 있지 않았을까 ,  표정관리는 제대로 했을까 등등 2주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였다.


이상적인 이야기 이겠지만 요즘 유튜브에 나오는 교통사고에 관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너무너무 삭막하고 무섭고 , 운전하기가 두렵고 , 짜증도 나고 , 보복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때가 있다.


이 날 겪은 직원분 의 웃음을 잊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믿음이 생긴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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