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겔공항에서의 끔찍한 5시간을 보내고 택시에 탔다. 우버를 부른 것이 먼저였는데, 앱에 찍힌 번호의 차가 보이지 않았고, 기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5분간 배정된 우버를 기다리다가 받은 답장은 ‘고객의 일방적 취소’로 인해 발생한 5유로의 수수료에 관한 메시지였다. 덕분에 미리 등록된 신용카드로 수수료가 자동 결제되었고, 테겔 공항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적립했다.
그날, 내가 급히 탄 택시의 기사는 태국계 독일인이었는데 여름마다 운전으로 번 돈을 가지고 대학에서 로봇 공학 연구를 한다고 했다. 그는 공항에서 프란츨라우어까지 가는 와중에 차창 밖에 보이는 장면과 연결 지어 베를린에 대해 알려줬다. 알렉산더 광장의 TV 타워가 보이자, 어딜 가도 멀리서라도 저 탑이 보일 거라고 하더니 히틀러 이야길 시작했다.
“히틀러, 알죠?”
“알죠.” 외국인이 역대 독재자들에 대해 우리에게 묻는다면 감정이 어떨지 상상하며 말을 아꼈다.
“알다시피 정말 나쁜 사람이죠. 이게 좀 아이러니한데, 베를린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딜 가나 그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거예요. TV 타워처럼. ”
그의 말을 다시 기억해낸 건 브란덴부르크 문에 갔던 날이다. 그날은 월드컵 기간이라 양쪽 문 앞에 바리케이드가 있어서 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허용된 만큼만 눈에 담고,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가기로 했다. 브란덴부르크, 국회의사당,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베를린에 오는 관광객 대부분이 하루에 들르는 코스라 가이드 투어도 여러 무리 볼 수 있다. 그중에 자전거 투어를 하는 무리도 상당한데, 어쨌든 멀찌감치서 이들을 따라 이동하면 길을 잃지 않고 각각의 스팟에 도착할 수가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건너편에는 주차장 하나가 있는데 이 주차장은 본래 히틀러가 머물던 벙커 중 하나다. 면면이 황량하고 협소한 주차장이라 벙커에 대한 표지판이 없다면 누구나 지나칠 법한 상태다. 지금은 주차장이 된 이 벙커에서 히틀러는 ‘영원히 베를린에 머물 것’이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와는 대조되게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는 반대편 주차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지나다닌다. 크고 작은 2711개의 비석은 베를린의 하늘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이곳을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으면 장중한 기운 때문에 비석들이 하늘의 비호를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석 사이를 지나면 미로를 통과하는 것처럼 불안하고 답답한 감정이 드는데, 이를 통해 잔혹한 학살의 고통을 가늠하게 된다. 그리고 이 추모 공원의 가운데에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다시 주차장이 보인다.
자살로 자신의 죄를 외면한 히틀러를 베를린은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주차장으로 쌩하고 들어오고 나가는 여러 대의 차는 고인이 된 죄수에게 하는 물리적인 형벌이 아닐까. 그는 죽어서도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매 순간 지켜봐야 한다. 건너편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세운 것을 보며 히틀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가 죽어서 죄를 뉘우쳤을 리는 없겠지. 게다가 죽기 직전까지도 벙커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주변을 산책하는 그의 태도를 미루어보건대, “다들 좋아했잖아. 왜 이제서야 그래. 짓지도 않은 죄의 벌을 받느니 그냥 사라지겠어”라고 생각할지도. 심지어 죽기 이틀 전, 그는 함께 자살하기로 한 아내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흔적도 없이 증발한 그의 최후가 주차장 붙박이가 된 것, 그리고 자신의 과오를 쉼 없이 보고 또 본다는 것.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마감 시간이 따로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자람 없는 형벌임에 틀림 없다. 묘비는 무슨.
묘비에 어떤 문구를 적고 싶으신가요. 준비 없이 적히는 것보다는 생각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대개 납골함에 적어야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