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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는 기쁨을 앗아가는 악마...

by 정강민

지금 몸살로 아프다. 하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만약 두 시간 뒤, 아니면 내일 아침에 몸살의 고통이 한순간에 말끔히 사라진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 아픔은 너무도 느리게,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진다. 그래서 세 시간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그 변화는 미세하다. 기껏해야 '아주 약간' 좋아졌다는 느낌 정도.


이렇다 보니 병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큰 기쁨은 없다. 극적인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완전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인식할 수 있다면 기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흐릿하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의 순간'은 대개 고통이 단숨에 사라지는 바로 그 찰나에 찾아온다. 시험 합격이나 로또 당첨처럼, 삶의 무게가 순식간에 가벼워지는 순간들. 그런 순간은 희열을 선사한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회복'은 너무 느려서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아쉽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서히'라는 말은 지금의 나에겐 기쁨을 앗아가는 악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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