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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Feb 02. 2021

그는 돌아와서는 안된다

- '똘아이' 예술가론

대학 시절, 청춘의 객기에 괴짜인 척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전공이 국어국문학이었던 까닭에 친구들은 제각각 문단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객기와 똘끼를 자신에게 탑재하고 공연히 세상의 괴로움이 모두 다 내 것 인양 포즈를 취했던 것 같네요. 저 역시 세계 문학사의 그 위대한 작가들을 흉내 내 약간의 소심한 기행(?)과 폭음들을 흉내 내곤 했습니다. 유치했지만 행복한 한때였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BTS 등의 K 팝 스타들에게 푹 빠지는 것이나 별 다를 바 없었지요. 그들이 자신들의 스타들의 춤을 따라 하듯, 우리는 작가들의 삶과 기행을 따라 했던 것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원에서 박사 논문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아서 학업 기간이 길어지게 됐고, 그 때문에 사회물(?)을 먹게 되며 그 철없는 생각과 행동이 바뀌었습니다. 명확히 저는 똘아이가 아님을 알았거든요. 사실 세상과 불화하는 작가나 예술가는 일종의 똘아이입니다. 똘아이는 자신이 똘아이인 줄 모르지요. 자신이 똘아이가 아닌 줄도 모르고요. 똘아이에게는 타인의 시선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똘아이처럼 보이고 싶어서 똘아이 짓을 하는 사람은 이미 똘아이가 아닌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흔들림 없이 그냥 제 갈 길을 가는 이가 똘아이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젊음의 객기를 지우고 나니 저는 똘아이가 아니더군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유치한 관종 문학청년이었을 뿐입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야 할 사람이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역할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지요.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제 자신의 본질을 파악한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의 길은, 똘아이의 길은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니니까요.


"이게 내가 가는 길이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중에서)


똘아이의 원조는 돈키호테입니다. 그가 보여준 똘아이 정신 중 하나는 '끝까지 똘아이'라는 것입니다. 삶이 어떤 풍경을 보여주든 자신의 길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갑니다. 그 모습이 처음에는 우스꽝스럽다가, 다음에는 애잔하고 측은해지며, 종국에는 장엄해집니다. 


똘아이는 그래야 합니다. 예술가란 그러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똘아이 흉내를 내는 사람이 중간에 길을 중단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면 우스꽝스럽거나 측은해집니다. 예술가가 똘끼를 버리고 이윤과 권력을 탐하면 추악해집니다. 그래서 똘아이로 태어난 것은 저주이자 축복이고 무능이자 재능입니다. 그는 끝까지 똘아이일 때 삶의 장엄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돌아와서는 안됩니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삶의 장엄함이 비애가 되고, 삶의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바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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