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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Mar 04. 2021

신은 왜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드셨을까?

-  눈동자에 대한 단상

하느님이 인간의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도 왜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만들었는지, 그것에 대해서 혹시 아십니까? 그것은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신의 섭리입니다. 흰자위를 놔두고 검은자위로 세상을 보라고 한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 양귀자, <숨은 꽃> 중에서


양귀자 선생님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인 <숨은 꽃>을 읽었을 때는 스치듯 읽었나 봅니다. 저런 부분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에 화장실에 붙어있는 글귀에서 저 대목을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신의 섭리'를 제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동화를 읽습니다. 잘 다듬어진 동화 속의 세계는 완벽합니다. 언제나 마지막에는 선이 악을 이기고 주인공은 완벽하게 선량합니다. 악당을 제외한 주인공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우호적이고요. 어린 우리는 그런 동화를 읽으며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기릅니다. 그러다 소설 속의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일단 주인공이 완벽하지 않아요. 때가 타 있습니다. 질투, 욕망, 분노, 시기, 패배감 등 온갖 감정에 휩싸여 있고요. 선이 언제나 악을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정 부분 악당이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우호적입니다. 양가적이지요.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적인 시선을 '어둠'으로, 동화적인 시선을 '밝음'으로, 은유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동화적인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렌즈입니다. 자라날수록 그 렌즈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소설적인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의 렌즈입니다. 삶의 고통이 기쁨이 되고, 헤어짐이 만남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적이 친구가 되는,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듯한 세상사의 아이러니와 복잡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소설적인 시선, 즉 어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은 왜 흰자위를 만드셨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최근에 유현준 교수님(홍대 건축학과)의 칼럼을 읽다가 발견했습니다. 


인간의 눈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특징은 눈동자에서 흰자위가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이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기 위해서 점점 흰자위가 많이 드러나게 진화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다른 동물들의 눈동자는 검은색 부위만 보여서 어느 방향을 쳐다보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눈동자를 움직이면 주변 흰자위의 모습으로 미루어 어느 방향을 쳐다보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통해서 인간은 주변 사람들과 말없이도 상대방의 의사를 파악하기 쉬워졌다. 이로써 집단을 이루고 같이 사냥하는 데 유리해졌고 덕분에 사피엔스는 몸집이 작아도 집단을 키워서 다른 동물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어둠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진실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과 부단히 의사소통하며 힘을 모아 세상을 헤쳐나가라는 것이 검은자위와 흰자위를 동시에 만든 신의 섭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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