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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저씨'가 될 순 없어!

- 왜 우리는 나이들수록 이상해지는가?

by 강호

왜 50살이 넘으면 많은 남자들이 ‘개저씨’가 되는 것일까요?(사실 여자들도 ‘개저씨’에 버금가는 진상짓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저는 남자라서 자세히 알기 어렵습니다. 근데 남자의 경우는 약간 알 것 같기도 해서 재미 삼아 적어봅니다. 너무 진지하게 대하지는 말아 주세요 사회과학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라 엄밀성은 대단히 떨어지니까요. 그리고 모든 남자들이 나이들면 이상해지는 것은 아니니 '난 아냐!!'하면서 너무 발끈하지는 마세요^^) 저는 한 여섯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의 상당수 아저씨들이 ‘개저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씩 이야기해 볼게요.


우선 첫째는 더 이상 선생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잘못을 질타하고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그런 스승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있었잖아요. 운이 좋은 친구들은 대학에서 좋은 교수님이 스승이 되어주었을 것이지만요. 근데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면 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고 감독하고 질책하는 ‘상사’는 있지만 ‘스승’은 더 이상 없습니다. 본인이 어떻게든 스승이 될 만한 모범적인 인물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학창 시절처럼 우리를 위해 훈육을 해줄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내가 잘못해도 그 잘못을 지적받고 바른 길로 가게 바로잡을 기회를 얻기 힘든 겁니다. 오로지 세상을 살아가다 마주치게 되는 실패와 좌절 같은 고통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개저씨’의 길로 가기 십상이고요.


둘째는 첫째와 비슷한데요. 이제 부모님도 더이상 잔소리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도 힘이 빠져 당신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겁습니다. 게다가 어렸을 때처럼 잔소리를 하면 자식이 듣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부모님에게 오히려 화를 냅니다. 듣기 싫다는 거죠. 사실 제대로 잘 교육을 받은 자식은 부모가 연로해질수록 더 공경하고 모십니다. 허나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그런 품성을 키우기가 참 힘듭니다. 회사의 상사나 동료에게는 하지 못할 불손한 언사와 고함을 가장 공경해야 할 부모님께 '시전' 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부모는 어느 순간이 되면 그런 자식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아저씨들의 반성의 계기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지요.


셋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름의 성공 경험’ 때문입니다. 50을 넘어서게 되면, 삶의 막장으로 고꾸라진 이들이 아니라면, 나름의 성공경험을 하나 둘씩 가지게 됩니다. 회사에 입사하거나 자기 가게를 열게 되고 거기서 나름의 직급을 얻고 작은 성공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게 쌓이면 엄청난 자기 효능감을 갖게 되죠. 30대 중후반부터 남자들 술자리에 모이면 가만히 들어보세요. 누구나 그런 작은 성공담을 마치 영웅담처럼 술기운을 빌려 과장해서 떠벌입니다. 듣다 보면 저 회사 일은 친구가 혼자 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과장되어 있곤 하지요. 그런 성공경험은 사람을 독선적으로 만듭니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귀를 닫죠. ‘내가 젤 잘 나가’는데 왜 남 얘기를 듣냐는 겁니다.


넷째는 그런 자신의 성공 경험으로 만들어진 신념이나 생각에 대한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 SNS나 유튜브 알고리즘입니다. 정밀하게 고안된 이들 매체는 내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느끼게 될 만큼 끊임없이 같은 논리의 콘텐츠를 우리 눈과 뇌에 퍼붓습니다. 확증편향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관, 기대와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는 아예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을 말하잖아요? 이런 경향이 극단적으로 강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내 생각은 틀릴 리가 없고 내 이념은 너무나 완벽하며 내 방식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거의 독재자급 자기 확신이 생겨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공부의 부재’입니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성인 독서율은 형편없지요. 몇몇 학식 있는 분들이 엄청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지 일반적인 성인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을 겁니다. 이렇게 책을 안 읽는 대신 도파민이 뿜뿜 나오는 쇼츠나 자극적인 드라마, 말초적인 예능 프로그램 등만 주구장창 접합니다. 이렇게 되면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지는 것은 다음 문제이고 우리를 동물과 구별해 주는 역할을 하는 대뇌전두엽의 기능이 현저하게 약해집니다. 그에 따라 속칭 원시뇌라고 하는 편도체의 활동은 강화되지요. 누군가 살짝만 화를 돋우거나 경적만 잘못 울려도 바로 스트리트 파이터 모드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여섯째는 ‘단조로운 경험’입니다. 가끔 골프 한 번 치고 휴가 때 가족들과 여행 한 번 가는 것 말고는 회사-일-술자리의 반복입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접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삶의 모습 등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되지요. 무식과 확증편향은 더욱 강해지고 타인의 삶을 이해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살면 50 넘어서 속칭 '개저씨'가 안 되는 것이 용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그 해결 방법도 이미 다 나와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내 삶의 모범이 될만한 인물을 찾아 그의 책이나 전기 등을 읽으며 스승으로 삼고 그에게서 배워야 하겠지요. 그러면서 여러 경험을 시도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챗바퀴 같은 회사-집-술집의 루틴을 벗어나 취미 활동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뻔한 SNS는 좀 꺼두고 생각의 폭을 넓혀줄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접해야 하고요. 그래야 우리 뇌의 활동이 크래커처럼 바스라져 아주 말초적이고 원시적인 사고밖에 못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돌고 돌아 ‘책’입니다. 개저씨가 안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니까요. 책 속에 스승이 있고 책 속에 길이 있으니,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을 수련해야 할 것입니다.


책, 책, 책을 읽읍시다. 멋진 세상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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