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삽질' 벗어나기

- 올바른 방향, 효율, 전속력

by 강호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상당수가 교훈적입니다.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유치원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을 법한 가르침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나 선생님의 잔소리로 들을 때는 아무리 옳은 말도 짜증스럽게 들렸는데 신기하게도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면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나루토>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인 ‘록 리’가 자신은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말하자 선생인 ‘마이트 가이’가 건넨 위로는 제 가슴에 와서 새겨졌습니다. '넌 천재야. 노력의 천재!' 아마도 이 대사가 세상의 수많은 천재가 되고 싶었던 범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을 것 같네요. 사실 이런 대사를 만나기 위해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드라마를 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겁쟁이 페달>이라는 애니메이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 경주는 꿈도 꾸지 않았던 주인공이 자전거부에 들어가 노력 끝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도 신선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애니메이션을 흠뻑 빠져 보게 된 건 긴박한 승부 뒤에 깔려있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과거 이야기들 때문이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시즌 2 10화에 이런 장면이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전거 부에 입부한 부원이 주장에게 ‘왜 내가 타면 자전거가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느냐’고 투덜거리듯 묻자 주장이 답합니다. 그건 멀리 앞을 보지 않아서라고, 전력을 다해 앞을 향하지 않으면 자전거는 나아가지 않는다고. 그렇게 답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볼 당시 저는 조금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고민은 아니었고요,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제가 기울이는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저만치 달려가는데 저 혼자 뒤로 가는 무빙 워크 위에 올라타서 앞으로 걸어 나가려고 낑낑대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더더욱 '아무것'에나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달콤한 삽질'이라는 게 있습니다. 가령 군대에서 행정병이었던 저는 발송용 우편물을 봉투 안에 넣고 풀칠해서 봉투를 봉하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이 일은 힘들지도 않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앉아서 붙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밥 먹을 시간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그 시간이 어쩌면 군대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은 많았지만 마음은 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군대에서나 통하는 얘기입니다. 회사에서는 딱 한 직급만 위의 사람이 보면 그 '달콤한 삽질'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일이 많고 바빠 보이지만 사실은 별로 쓸데없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인데 붙들고 있는 경우 말입니다. 면담을 해보면 서로 간에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상급자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데, 본인은 정말 ‘토 나오도록’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평가 없는 노력은 대부분 시간 낭비가 되거든요.


개개인의 자기 계발에 있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신중히 고려하지 않은, 어쩌면 무용한 노력을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행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노력하고 있어, 나는 열심히 하고 있어, 라는 착각을 심어주는 '달콤한 삽질'에 빠져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달콤한 삽질'을 맹렬히 하고 있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때로는 고개를 들어 앞을 봐야 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맹렬히 노력할 때 달콤한 삽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겁쟁이 페달>의 저 교훈적인 대사를 듣고 깨달았다. 제가 '달콤한 삽질'에 빠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수첩에 적었다.


'올바른 방향, 효율, 전속력'


이렇게.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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