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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Dec 30. 2021

겨울 中

잠잠이/ 레오 리오니

네덜란드 작가 레오 리오니의 들쥐들에게도 계절은 공평하다.

해묵은 돌담 안에 살고 있던 들쥐 다섯 마리, 추운 겨울을 대비해 곳간 식량을 채우려 모두 분주한데 베짱이 같은 ‘잠잠이’가 있구나.


잠잠아, 넌 왜 일 안 하니?

나도 일하고 있어.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빛을 모으고 있는 중이란다.

대체 뭘 하는 거니?

빛깔을 모으는 거야. 겨울은 잿빛이니까.

너 졸고 있구나.

아아니, 말을 모으고 있는 거야. 얘깃거리마저 없어지는 날을 위해…


언제나 배를 채워줄 줄 알았던 곡식들이 얼마 못가 다 떨어지고 집안도 썰렁, 들쥐 형제들은 말을 잃어 간다.

문득 잠잠이가 모은다는 게 궁금해졌다.

네가 모은다던 건 어떻게 되었니?

커다란 돌멩이 위로 올라선 잠잠이.

눈을 감으라고.

해님 이야기에 따스한 온기가 차오른다.

새파란 넝쿨꽃, 빨간 양귀비, 노란 밀 이삭, 짙푸른 딸기 잎 이야기에 잿빛 세상은 생기가 돈다.


그럼 말은?

목청을 가다듬은 잠잠이 무대에 선 이처럼 읊는다.

눈송이 뿌리는 이 누구일까요

얼음을 녹이는 이 누구일까요

궂은 날씨 만드는 이 누구일까요

좋은 날씨 만드는 이 누구 일가요


유월이 오며는 네잎 클로버

무럭무럭 가꾸는 이 누구일까요

한낮을 한밤으로 저물게 하여

달빛을 밝히는 이 누구일까요


하늘에 살고 있는 들쥐 네 마리

너처럼 나처럼… 들쥐 네 마리


맨 처음 봄 쥐는 빗물에 흠뻑

그다음 여름 쥐는 꽃으로 단장

가을 쥐는 호도 밀 듬뿍

그리고 겨울 쥐는 네 발이 꽁꽁


한 해가 네 철이니 좋지 않아요

세 철? 다섯 철? … 아유 안 돼요


야, 너 시인이구나!






잠잠이가 되고픈 계절이다.

지난 계절 모은 빛깔과 이야기를 열어보려 한다.

식물, 동물, 사람... 또 무엇이 있으려나.




*잠잠이 / 레오 리오니/ 분도출판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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