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 中

잠잠이/ 레오 리오니

by 여름지이

네덜란드 작가 레오 리오니의 들쥐들에게도 계절은 공평하다.

해묵은 돌담 안에 살고 있던 들쥐 다섯 마리, 추운 겨울을 대비해 곳간 식량을 채우려 모두 분주한데 베짱이 같은 ‘잠잠이’가 있구나.


잠잠아, 넌 왜 일 안 하니?

나도 일하고 있어.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빛을 모으고 있는 중이란다.

대체 뭘 하는 거니?

빛깔을 모으는 거야. 겨울은 잿빛이니까.

너 졸고 있구나.

아아니, 말을 모으고 있는 거야. 얘깃거리마저 없어지는 날을 위해…


언제나 배를 채워줄 줄 알았던 곡식들이 얼마 못가 다 떨어지고 집안도 썰렁, 들쥐 형제들은 말을 잃어 간다.

문득 잠잠이가 모은다는 게 궁금해졌다.

네가 모은다던 건 어떻게 되었니?

커다란 돌멩이 위로 올라선 잠잠이.

눈을 감으라고.

해님 이야기에 따스한 온기가 차오른다.

새파란 넝쿨꽃, 빨간 양귀비, 노란 밀 이삭, 짙푸른 딸기 잎 이야기에 잿빛 세상은 생기가 돈다.


그럼 말은?

목청을 가다듬은 잠잠이 무대에 선 이처럼 읊는다.

눈송이 뿌리는 이 누구일까요

얼음을 녹이는 이 누구일까요

궂은 날씨 만드는 이 누구일까요

좋은 날씨 만드는 이 누구 일가요


유월이 오며는 네잎 클로버

무럭무럭 가꾸는 이 누구일까요

한낮을 한밤으로 저물게 하여

달빛을 밝히는 이 누구일까요


하늘에 살고 있는 들쥐 네 마리

너처럼 나처럼… 들쥐 네 마리


맨 처음 봄 쥐는 빗물에 흠뻑

그다음 여름 쥐는 꽃으로 단장

가을 쥐는 호도 밀 듬뿍

그리고 겨울 쥐는 네 발이 꽁꽁


한 해가 네 철이니 좋지 않아요

세 철? 다섯 철? … 아유 안 돼요


야, 너 시인이구나!






잠잠이가 되고픈 계절이다.

지난 계절 모은 빛깔과 이야기를 열어보려 한다.

식물, 동물, 사람... 또 무엇이 있으려나.




*잠잠이 / 레오 리오니/ 분도출판사,200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물을 물로 보이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