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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Oct 24. 2022

마음은 호수와 같아

청소년 소설 <호수의 일>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소설 첫 문장을 읽은 순간 서늘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우리 가곡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아주 정교하게 비틀어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은데, 서늘하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은 호수와 같아.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은 먹먹했다. 어쩔 수 없이 오는 봄, 얼어붙은 호수가 녹는 일, 무척 아프고 슬픈 일이었다.

추운 겨울 다음 봄, 희망이자 따사로움이지만 완연한 봄을 이루기 위한 일은 자연도 마음도 쉽지만은 않다.

호정이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 일도 그랬다. 그렇다고 안전하나 공허하고 갑갑한 얼음으로 계속 있어야 할까.

누구든 처음부터 얼어붙은 마음인 건 아니다. 생명줄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족이 내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면?

호정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꽁꽁 동여매고 있다.


전학 온 친구 은기에게서 호정은 숨기고 있는 마음을 느끼고, 둘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끌린다. 은기에게 궁금한 일들이 툭툭 떨어지지만 호정은 묻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도 아파지는 것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마침내 나타날 때가 되었다는 듯 아픈 것들이 휘몰아친다. 얼어붙은 마음에 균열이 시작되었다. 마음의 봄은 계절처럼 정확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어쩌면 안 오는 날들이 이어질지도.


이 청소년 소설은 가정폭력 피해자인 고등학생 호정과 은기의 이야기다.

은기가 뉴스에 나왔던 드러난 가정폭력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면  호정은 겉으로는 평범한 집 딸이자 평범한 학생이다.

어떤 말보다 그 마음을 먼저 배워버린 아이.

가족 안에서 한없이 아프고 쓸쓸했던 아이.


문득 이 소설을 읽고, 소설을 읽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할 말이 떠올랐다.

호정이가 마음을 먼저 배워 아팠다면, 난 마음을 배우기 위해 소설을 읽는 거였다.

어떤 심리책보다 어떤 관계를 위한 좋은 말씀보다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이런 마음도 있어.

모든 관계의 출발이자 두 얼굴의 가족은 조심스럽다. 상처받고 치유받는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미안해…. 미안, 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 마음을 알았더라면, 우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참 많이도 미안할 일을 만든다.


이 현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다. 그녀 호수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잔잔하고 촘촘한 물결에.




* 호수의 일/ 이 현/ 창비, 2022

* 민트색 글은 책 문장을 그대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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