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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Dec 20. 2018

죽음의 평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첫 사랑의 여인이 최근에 죽었다는 소식을 노인이 되어 전해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진다면 그 첫 사랑은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더 생각해도 더 이상 좋은 이야기의 예를 저는 찾기 어렵습니다.

좋은 것과 착한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의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고 포괄적이라 저도 공감하는 기준으로 삼기 어렵습니다.

성인이 되고 결혼하여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우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니 제 인생도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한 것이라곤 자식들 성장시킨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 삶은 ‘던져진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나 자유인이 되고자 꿈꾸었을 뿐,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댔습니다. 스스로의 평가는 자기 생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망상에서 나오는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자식을 키워낸 것이 유일한 가치 창출이었다면 평가를 자식에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때 어른이 된 아들이나 딸의 마음이 어떠하냐가 저의 삶에 대한 진정한 평가 아닐까요? 아들이나 딸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과 처지에 저의 책임이 큽니다. 키운다는 것은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것 만이 아닙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해서 어떤 상태에 있느냐도 키운 것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죽음에 대해 자식들이 아쉬운 마음과 애틋한 마음이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입관할 때, 시신의 차디찬 손을 잡고 창백한 얼굴에 입맞춤하는 것에 자식들의 주저함이 없다면 잘 산 인생 아닐까요?

그래서 이즈음 아들이나 딸을 만나면 항상 서양식으로 허그합니다.

이 다음에 주저하지 않도록...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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