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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4. 2022

피프티 피플

배드민턴 동호회


겨울방학이다.


12월 초중순경의 기말고사를 끝으로 대학생들의 방학은 시작이다. 교수들은 기말고사 채점하고 중간고사 및 과제 등의 점수를 합산하여 성적을 입력하면 학기가 끝난다. 남보다 빨리 방학을 맞고픈 나 같은 교수들은 하루 이틀 만에 성적처리를 끝낸다. 그러면 겨울 방학을 무려 두 달 반이나 누릴 수 있다. 겨울은 모든 대학교의 입학 시즌이라 입학업무를 주관하는 입학처는 겨울만 바쁘다. 신입학뿐 아니라 편입학도 있고 여러 가지 시험에 제법 많은 시험감독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처럼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연로(?) 교수들은 온갖 핑계를 대고 감독 열외 신청을 해도 그렇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시험감독은 공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학입시는 매우 중요하다. 수험생의 인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체력과 순발력이 떨어지는 원로교수님들이 시험감독 중에 혹시라도 실수하여 민원을 야기하면 학교가 매우 곤란해진다. 그래서 가능한 젊은 교직원으로 감독을 채운다. 입학업무를 관장하는 교직원들은 겨울방학이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따뜻한 먼 나라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친구랑 둘이 떠나거나 혼자라도 갔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두 번째 맞이하는 겨울방학이다. 지난겨울의 스케줄을 훑어보니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를 이곳저곳 다녔다. 더 이상 갈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배드민턴 레슨을 등록했다. 연이은 시간대의 동호회 클럽도 등록했다. 2022년 1월을 아침마다 배드민턴으로 시작한다. 10년도 전에 배드민턴을 몇 달 쳐봤다. 엄청난 땀을 흘리는 정말 과격한 운동이다. 이 나이에 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몸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오십견이 지나간 어깨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 레슨 코치가 절대 무리하지 말란다. 무리하면 몸에 신호가 오는데 그 신호는 본인만 알 수 있단다. 쉬엄쉬엄 치란다. 정말로 나를 걱정하는 눈치다. 하긴 이젠 몸도 내 몸이 아니다. 동호회 클럽 총무님은 동호회 규칙을 설명해준다. 매달 회비가 있는데 회비는 주로 배드민턴 공 값이다. 회비를 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는데 내지 말란다. 내가 치는 것을 보니 아직 새 공이 필요 없을 것 같단다. 첫 달은 면제해 주겠단다. ㅎㅎ 완전 어르신 취급당했다. 동호회는 보통 둘이서 가볍게 난타를 쳐 몸을 풀고는 넷을 모아 바로 복식 게임에 들어간다. 어찌할 줄 몰라 애매모호한 상황 속에 앉아 있는 어르신 신입을 그래도 나이 좀 있어 보이는 분들이 상대를 해준다. 매일 열심히 치는 아줌마들이 주로 내 상대다. 40대 정도의 남자들은 정말 잘 친다. 거의 선수 수준이다. 난 도저히 저 틈에 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클럽 정원은 50명인데 매일 참석하는 회원은 30명 수준이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들이 오전의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양한 색깔의 복장을 한 다양한 얼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숨을 몰아 쉬며 하얀 깃털 공을 상대방 코트로 내지르고 있다.


피프티 피플이란 정세랑 님의 소설이 있다. Fifty People. 50명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소개된다.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도 있고, 뉴스에서 흔히 본듯한 이야기도 있다. 50명이 다 주인공이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지방도시에 제법 큰 병원이 있고 50명은 병원에서 일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받거나 최소한 병원 근처에 산다. 서로의 인생에 얽히기도 하지만 크게 연결되진 않는다. 50명의 인생을 읽으면서 빙그레 미소 짓기도 하고 안타까워 눈물짓기도 했다. 50명의 인생을 어떻게 엮어 소설을 끝낼까 궁금해하면서 며칠을 재미있게 읽었다. 50명은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도마뱀이 나오는 클레이메이션 영화를 함께 보다가 극장 건물에 불이나 모두 함께 옥상으로 대피하여 근처 병원의 닥터헬기와 소방 헬기를 타고 무사히 탈출하는 사고로 소설이 끝났다. 한 공간에 우연히 함께 한 사람들. 각자의 인생은 모두 완벽한 소설이다.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체육관에 우연히 함께 한 사람들 50명 모두 소설 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제법 오랫동안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거의 매일 같이 접하다 보면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Fifty people 같은 소설을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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