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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30. 2022

배드민턴의 재미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한 지 네 달이 지났다. 가능한 오전엔 일을 만들지 않고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친다.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유를 깨달았다. 배드민턴이 참 재미있다.


재미의 발견(김승일)이란 책이 있다. 온갖 재미있는 콘텐츠를 살펴보고 재미란 관점에서 공통 요소를 찾아낸 책이다. 재미있는 콘텐츠는 경이, 전의, 격변의 요소를 품고 있다고 한다.


배드민턴은 우선 경이롭다. 어떻게 저런 공을 받아낼  있을까? 어떻게 저곳으로 공을 보낼  있을까? 보고 있거나, 하면서 자주 경이를 본다. 나도 그렇게 받아 내고, 그렇게 보내고 싶지만 이미 어르신이  몸이  따라준다. 5 전에 아니 10 전에 배드민턴을 시작했으면 좋았을  하는 생각을 하다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명언이 생각났다. 그리고 ! ! ! 하며 죽는다는 유머도... 나보다 나이 많으신 동호회 회장님은 "배드민턴은 결국 구력입니다. 꾸준히 하시다 보면 모든 공을  받아낼  있습니다." 하시면서 항상  같은 초보 신입들을 격려해준다.


전의는 의미의 전환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유머가 대표적인 전의의 예다. 스매싱과 드롭, 헤어핀과 언더 클리어, 숏 서브와 롱 서브 등 받아내야 하는 공이 다양하다. 스매싱 폼으로 드롭을 떨어뜨리고, 당연히 언더 클리어할 줄 알았는데 헤어핀을 놓거나, 보통 숏 서브를 하는데 갑자기 롱서브를 똑같은 동작으로 한다. 항상 예상치 못한 공이 내게 온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잘하는 플레이가 있다. 복식 게임을 몇 번 해보면 상대방의 장기가 무엇인지 나름 판단되어 대응을 하기도 한다. 처음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은 어떤 플레이를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두 번의 같은 플레이를 당해 점수를 잃고 나면 기억이 된다.


격변은 빠른 진행이다. 이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스포츠 별로 없다. 라켓을 떠나는 배드민턴 공의 초기 속도가 어느 구기 종목보다 빠르다고 한다. 선수들의 스매싱에 의한 공의 초속이 시속 332km에 달한다고 어디서 읽었다. 25점으로 끝나는 복식 게임에 소요되는 시간이 15분 정도라고 생각된다. 길어야 30분이다. 내 체력으로는 세 번의 게임을 하고 나면 심장의 펌프질이 한도에 달하고 가쁜 숨이 차오르며 온 몸에 땀이 흐른다.


땀 흘려 운동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운동을 하면 왜 기분이 좋아지는지에 대해 많은 연구논문이 있다. 구글링을 해보면 엔도르핀, 엔도카나보이드,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흥분제 암페타민과 비슷한 페닐틸라민 등이 검색되는데, 이는 아직도 왜 그런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너무 많다는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논문들의 공통점은 운동을 하면 마약이나 대마초 성분에 들어 있는 호르몬 성분이 생성되어 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 쾌감이 너무 커서 배고픔도 잊게 한다. 그리고 이 호르몬들은 12시간 지속한다는 것이다. 먹고 자는 데 사용하는 12시간을 뺀 나머지 12시간 행복하다면 역시 아침에 운동하는 것이 좋다. 낮 시간 동안 계속 기분이 좋다.


배드민턴은 재미의 모든 요소를 갖고 있다. 


땀 흘린 뒤, 샤워의 즐거움 또한 환상이다. 이렇게 땀 흘려 본 지 오래다. 더워서 흘리는 땀과 운동으로 흘리는 땀은 다르다. 체온 유지 기능은 같지만 전자는 수동적인 땀이고, 후자는 아주 능동적인 땀이다. 매일 아침 배드민턴을 열심히 치는 사람들은 능동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아함은 잘 조정된 매끄러운 움직임 혹은 겸손하고 관대한 태도로 표현될 수 있다. 이 둘은 대개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움직임이 좋은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그들의 편안함은 느긋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에서 나오는데, 우리는 바로 그런 점에 끌린다. 기교나 연습으로 얻어진 완벽함이 아니라, 신체의 매끄러운 움직임이 그 사람의 본성에 관해 말해주는 어떤 것에 이끌리는 것이다. 우아함은 외모나 세련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전적으로 연민과 용기의 문제다.’  - 우아함의 기술(사라 카우프만) -


책에서 저자 사라 카우프만은 스포츠 스타플레이어의 동작에서 우아함을 본다고 했다. 사라 카우프만은 특히 스위스의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의 플레이가 다른 테니스 강자들보다 우아하다고 했다. 동영상을 보니 나도 동감이 간다.

https://youtu.be/-nNwTyxXcH8


배드민턴 복식 게임을 마치고 가쁜 숨을 진정시키느라 벤치 위에 서서 물 마시며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구경한다. 나도 우아함을 본다. 힘들이지 않고 간결하고 부드러운 스윙 동작에서 우아함을 본다. 공을 따라가는 빠른 스텝이 살사나 탱고보다 우아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떨어지는 공에서 경이와 우아함을 본다. 우아한 스윙을 하려면 우선 몸이 부드러워야 한다. 잔뜩 힘들어가고 뻣뻣한 내 몸에서 우아한 스윙 동작이 나오기 어렵다. 내 움직임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고 싶다. 얼마나 힘들어 가는지 얼마나 우아함과는 먼지 보고 싶다. 힘 빼기가 정말 어렵다.


60대 중반의 이 나이에 장래희망이 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내 장래희망은 우아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우아하게 배드민턴 치는 노인이 되고 싶다. 절망보다 무망이 무섭다는데 내 희망은 아직도 계속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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