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운전하며 출근하는 중이다.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나는 항상 YTN 뉴스만을 듣는다. YTN 뉴스가 끝나고 노래를 틀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럴 때나 무의식적으로 노래 가사와 멜로디를 접한다. 가냘프고 구성진 목소리의 여자 가수의 노랫말이 진부한 멜로디에 실려 내 귀에 들어왔다.
'그대는 나의 인생 영원한 나의 사랑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리 영원한 나의 사랑
들판에 핀 예쁜 꽃들처럼 당신의 어여쁜 모습이여
언제나 나만을 믿어주는 그 마음에 나는 나는 행복해요
그대는 나의 인생 영원한 나의 사랑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리 영원한 나의 사랑'
듣고 있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호모 사피엔스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사랑을 꿈꾸며 세 번 결혼식을 한 친구도 생각나고, 사랑을 꿈꾸다 두 번 이혼하고 혼자 사는 친구도 떠오르고, 사랑을 꿈꾸며 '목숨까지 주고픈 사랑'이란 시 구절을 보여주던 친구도 생각났다. 사랑을 꿈꾸며 노래방에서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만을 부르던 어르신도 생각난다. '사랑을 할꺼야'를 하도 많이 불러 3619(금영 노래방 기계)와 2427(TJ노래방 기계)을 자신의 비밀번호로도 사용하는 어르신을 나는 아주 잘 안다.
사랑이란 상상력이 풍부한 호모 사피엔스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 아무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과학이 증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수많은 문학작품이 사랑을 얘기하고, 대부분의 노래 가사 역시 사랑을 노래한다. 예술과 방송에서 사랑을 빼고 나면 아마 남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랑하고 결혼해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콩쥐, 춘향이 모두 사피엔스의 의식 속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했다. 동화책과 디즈니가 현실을 왜곡했다. 사랑이 짜릿하고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의 작용이라면 결혼은 유사 이래 일종의 거래였고 도박이었다.( https://brunch.co.kr/@jkyoon/416 ). 사랑해서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그 둘은 함께 일어나도 그 지속시간이 얼마 되지 않고 보통은 전혀 별개의 사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랑과 결혼을 동시에 기대하고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겪는다는 알랭 드 보통의 생각( https://brunch.co.kr/@jkyoon/253 )까지 내 의식이 다다랐다.
태어난 지 만 4주가 된 외손녀한테는 디즈니 보여주지 말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