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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r 13. 2023

헤어질 결심 6

Decision to leave.( https://brunch.co.kr/@jkyoon/484 )

헤어질 결심 4.( https://brunch.co.kr/@jkyoon/494 )


동남아 가고 오는 부산스러운 비행기 안에서 네 번을 보고, 도서관에서 영화 대본을 구해 읽었다. 그리고 삼일절 휴일에 독립영화관에서 정식으로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인터넷에서 상영 중인 영화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표 한 장을 예매했다. 삼일절 12:40 표를 예매하고 친한 친구에게 문자 했다. '헤어질 결심' 봤냐고? 아직 못 봤다는 친구가 자기 표도 예매하란다. '마침내' 올해 만 65세 어르신이 되는 남자 둘이 영화를 봤다. 작은 영화관은 제법 나이 든 부부나 충분히 나이 든 할머니 둘이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사람들로 제법 자리가 찼다. 남자 어르신 둘은 역시 우리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까만 배경화면에 한없이 흐르고 있다. 아직 불은 켜지지 않았고 자리를 뜨는 관객도 있지만 어르신 둘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끝없이 흐를 것 같던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급한 일 없는, 시간은 많은 어르신 둘은 관객 중에 거의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함께 했다.


"영화 어때?"

"좋았어.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보통 마지막 장면이 끝나면 서둘러 일어나는데, 오늘은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네. 좋았단 얘기지."

"영화가 준 여운을 계속 음미하며 앉아 있었던 거지."

"영화 '색. 계'에서의 탕웨이가 떠오르는 장면이 몇 번 있었어."

"그래? 나도 오래전에 '색. 계' 봤지만 정사 장면이 너무 적나라해서 보기 좀 불편했던 기억 밖에 없는데. 이 영화의 줄거리 핵심은 불륜인데, 불륜이 아니고 사랑으로 보이는 이유가 뭘까?"

"탕웨이가 이쁘고 우아해서?"

"어색한 한국말을 하는 우아하고 신비스러운 중국 여인의 아우라? 아니면 불륜의 본능을 갖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라?"

"불륜이 본능이라는 것은 좀 듣기 거북한데."

"그래? 그러면 사랑에 대한 환상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불륜을 덮어버린 거 아닐까?"


삼일절이 지난 주말 다른 친구의 농막을 찾았다. 주말 이틀을 추풍령 자락의 농막에서 자며 함께 빈둥거렸다. 산속 농막이지만 인터넷과 넷플릭스가 있다.

"헤어질 결심 봤냐?"

"아니."

"그러면 넷플릭스로 같이 보자. 깜깜해지면 할 일도 없는데..."

이른 저녁을 먹고 제법 큰 TV 화면으로 둘이 영화를 보았다. 두 시간 10분 동안 쉼 없이 집중했다.

"영화 어때?"

"괜찮아. 그렇지만 너처럼 호들갑 떨며 몇 번씩 다시 보고픈 마음은 안 드는데..."

"그래? 내가 이상한 건가?"

"글쎄. 뭐 이상한 것 까지야 하겠어? 네가 좀 독특하긴 하지."


그런 말 있다. "가장 친한 친구 셋을 골라 평균하면, 그 평균이 바로 자신이라고."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인생을 지금도 다르게 살고 있지만 이해관계없는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주 좋은 것이다. 특히 나이 든 어르신들에겐...


친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는데 반응이 제각각이다. 한 친구는 진한 여운을 함께 느꼈지만, 한 친구는 별 여운 없단다. 별 감흥이 없단다. 그냥 영화일 뿐.


헤어질 결심을 보고 가슴 짠한 여운을 느꼈다면 아직 진정한 사랑,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아닐까? 사랑이란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이성적으로 단정할 만큼 충분히 나이 들었지만 아직도 동화 속 백설공주나 신데렐라가 있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런 사랑을 영화 속에서나마 보고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 싶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드라마의 흔한 소재인 불륜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 든다면, 이미 이런 사랑, 로맨스로부터 초월한 것이다. 해탈한 것이다. 그런 사랑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잠시 좋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다룬 그 많은 드라마와 영화는 보지 않는다. 시시해서... SF영화나 부시고 때리는 액션 영화는 본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인생을 죽이기 위해...


당신은 어땠나요???

https://youtu.be/DmXe-w56m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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