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트너(partner)란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배드민턴 때문이다.
배우자는 영어로 Spouse다. 배우자를 Partner라고 소개해도 무방하다. Spouse는 법적으로 혼인관계에 있는 경우에만 사용한다. Partner는 Spouse를 포함하여 훨씬 넓은 개념이다. 동업자가 대표적인 파트너다. 법무법인, 회계법인, 컨설팅회사 등에서 파트너라고 하면,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변호사, 회계사, 컨설턴트를 의미한다. 그냥 월급쟁이가 아니란 얘기다. 한 팀이 두 명으로 경기하는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등의 스포츠에서도 파트너이고, 춤을 둘이 함께 추는 경우도 파트너다. 동성부부가 인정되지 않던 시대에는 동성커플의 상대방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파트너라고 했다. 동거하고 있는 사실혼 관계도 파트너다. 미국처럼 동성부부를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파트너이자 Spouse이다. Spouse가 꼭 자신과 성(sex)이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아직 동성부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배드민턴 경기는 단식과 복식이 있고, 복식은 동성과 혼성이 있다. 모든 스포츠 경기가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인 공격성과 인정욕구를 해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함께 조를 이뤄 경기하는 복식에서 동성은 쉽게 이해되나 혼성은 그 유래가 궁금하다. 혹시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수를 늘리기 위함으로 시작된 것 아닐까 싶다. 파워의 차이가 명백한 남녀를 한 팀으로 묶어 겨룬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배드민턴 클럽(동호회)에서 복식만을 한다. 복식경기만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단식게임이 너무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아무리 단식 코트가 복식보다 폭이 좀 작다 하여도 행동반경이 전 코트이다 보니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많다. 프로 선수가 아닌 이상 체력이 달릴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는 배드민턴 코트가 클럽회원 수에 비해 절대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이다. 배드민턴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두 배인 복식게임만이 행해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복식게임을 할 네 명이 먼저 정해지고, 제일 잘하는 사람과 제일 못하는 사람이 한 조를 이루는 것이 거의 법칙이다. 그래야 게임이 비등하기 때문이다. 함께 게임할 네 사람이 계속 바뀐다. 따라서 파트너도 계속 바뀐다. 파트너를 정하는 눈치싸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 누구나 게임에서 이기고 싶다. 확실히 지는 게임을 하고 싶어서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하는 거지. 내가 네 명중에 제일 못 쳐도 제일 잘하는 사람의 파트너가 되면 곧잘 이길 수 있다. 파트너의 파워와 기술 덕분에... 그렇게 게임을 이겨도 기분이 좋다. 참 인간이란...
파트너가 고정되는 경우가 있다. 구청장기 대회나 협회장기 대회처럼 한 지역의 여러 클럽에서 참가하는 경기에 출전할 때이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한두 달 전부터 파트너를 고정하고 자리 연습을 비롯한 소위 훈련을 시작한다. 동성인 경우는 비슷한 파워와 실력을 가진 파트너를 물색한다. 혼성인 경우는 공격 시 전위와 후위를 생각하여 보통 여자가 전위를 남자가 후위를 맡는다. 아무래도 남자가 파워가 세니 후위에서의 스매싱의 위력이 더 좋기 때문이다. 자신의 클럽에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전국을 수소문해서 모셔올 수도 있다. 이런 분을 용병이라고 한다.
파트너가 정해지고 한두 달의 연습도 매일 하고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면 계속 승급이 된다. 초심부터 시작하여 D, C, B를 거쳐 대망의 A조가 되는 것이 배드민턴의 즐거움에 중독된 사람들의 꿈이다. 한번 A조가 되면 평생 A조다. 사업을 망해 접은 사장도 사장이라 부르고, 은퇴한 연로 교수도 교수라 부르듯이 현직이었을 당시의 호칭을 사용하여 대우해 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종의 불문율이다.
그렇게 고정 파트너와 수년 이상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다. 이십 년 넘게 고정 파트너를 유지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고정된 파트너가 맘에 안 드는 경우는 없을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배드민턴 파트너 말고 결혼한 파트너가 맘에 안 들어 이혼하는 부부도 부지기수인데...
누구나 인정하는 내 고정 파트너(동성 또는 이성)와 헤어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1. 적당한 이유를 대며 클럽을 옮긴다.(사실 구차하게 이유 댈 필요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2. 배드민턴을 관두고 다른 중독거리를 찾는다.(더 멋진 신세계를 맛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