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누가 떠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등등)는 많겠지만, 은퇴한 어르신이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 지금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 이유가 제일 크다. 지금이 한가하게 여행 떠날 상황이냐고?
여행을 계획하고 비슈케크 왕복 비행기표를 산지는 한참 되었다. 여행 출발일자(6월 22일)가 점점 가까워 오자 근심과 걱정이 더 많아진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과연 이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싶다. 그렇지만 결국은 무사히 떠났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언제 해결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여행이 아니고 방랑을 한다. 여행은 목적이 나름 있지만 방랑은 목적이 없다. 방랑은 혼자 하는 것이 쉽고 편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혼자 지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쉽게 혼자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 하는 방랑은 그렇게 돈 많이 드는 화려한 사치가 아니다. 한국보다 소득이 낮은 나라를 방랑하는 것은 한국에서 일상을 사는 것보다 돈이 덜 들 수도 있다. 방랑이 좀 불편할 수는 있지만...
방랑하기 위해 배낭을 싸는 것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일상을 다른 환경 아니 낯선 환경으로 옮기는 것이다 보니,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것과 여행지에서 필요한 것들을 빠트리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키르기스스탄 도착 이틀 만에 신고 간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덜렁거리고, 트레킹에 필수인 방수방풍재킷도 안 가져왔고, 등산바지 허리띠도 빠트렸다. 그렇다고 방랑이 방해받지 않았다.
키르기스스탄에서 15박을 혼자 방랑하고 왔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yrgyzstan
방랑의 목적이 있다면 어쩌면 목적은 방랑 중의 객사다.( https://brunch.co.kr/@jkyoon/551 ) 어느 누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의 죽음을 기다리기를 원하겠는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암에 걸려 죽는 것이 낫다는 임종의사들의 의견도 있다.( https://brunch.co.kr/@jkyoon/461 ) 암보다도 객사가 더 좋은 것 아닐까? 건강하지 않고는 방랑을 할 수 없다. 방랑은 건강수명 내에서만 가능하다. 갑자기 가는 것이 객사라면 건강수명 중에 하는 것이(당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가!!!
중독은 나쁘다고 한다.
커피, 담배, 술 등은 한동안 못하면 갈망이 생긴다. 갈망이 중독의 전형적인 현상이지만 갈망이 생기고 그 갈망이 어느 순간 채워지면 만족감을 넘어 황홀경을 경험할 수도 있다. 과연 인생에서 황홀경을 경험한 순간이 사람들은 몇 번이나 될까? 그렇게 보면 중독이 은퇴한 어르신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건강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건강을 챙긴다고 온갖 중독을 멀리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몸에 좋다는 것만 먹은 결과, 튼튼한 심폐기능을 가져 치매가 왔는데도 심장이 멀쩡히 뛰어 자식들이나 주변에 못 볼 꼴 보이면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십여 년을 버티다가 구순을 지나 백수라도 하는 날에는 ‘장수만세’라며 춤이라도 춰야 할까?
은퇴한 어르신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든 상관없지 않을까? 얼마 남지 않은 자기 인생 하고픈대로 살다가 일찍 가고 싶다는데, 몸 생각하라며 자식들이 말리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연로한 부모에게 세배를 하며 “복 많이 받으세요!” 또는 “새해에도 건강하세요.”란 말속에는 "새해에도 건강수명 유지하세요"란 의미라고 생각한다.
방랑 중에 숙소를 정하면 3일 밤을 자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3일은 자야 원기회복하고, 새로운 방랑 지를 찾아 떠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에 귀국했는데 3일의 일상이 지나 수요일이 되니 어김없이 스카이스캐너(항공편 검색 사이트)를 열었다.
다시 방랑을 떠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p.s. 표지 사진은 비슈케크 어느 카페(본죽) 벽면의 글귀를 찍은 것이다. 한참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