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부터 오피스 잡까지
나는 원래 캐나다에서 알바를 할 생각이 없었다.
아마 일하는 것이 단순히 돈을 버는 목적이었다면 나는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 '공부'를 더 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돈은 한국 가서 벌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일 하면서 오히려 영어가 는다고, 책에 안 나오는 진짜 생활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주변에서 다들 그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일을 해 보기로 했다.
우선 제일 접근하기 쉬운 방법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지원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빅토리아에 한국인 수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국인 오너가 운영하는 커피숍, 레스토랑, 편의점 등이 꽤 있었다. 캐나다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영어 실력도 부족한 나로서는 한국인 오너의 가게를 공략하는 게 최선이었다.
(사실 한두 번 알바 경력이 쌓이고는 로컬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베이커리 등에도 지원한 적이 있는데, 내 영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 없어 보이는 태도가 문제였는지, 한 번도 뽑힌 적이 없다.)
캐나다에서 내가 한 알바 목록
- 커피숍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만들기
- 샐러드 바에서 각종 야채 준비 및 리필하기
- 레스토랑에서 서빙
- 호텔 프런트 데스트 업무
이중 내가 가장 오래 했던 일은 레스토랑 서빙이었다. 내 첫 포스팅 <언니 나이가 뭐 어때서?> 밝혔듯 나는 오래전 꿈이 승무원이었고, 그 꿈을 가지게 된 데는 고객 응대에 자신이 있다는 점도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당시에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었으므로 풀타임으로 근무했는데, 그러다 보니 단골 고객의 이름, 자주 시키는 음식, 하는 일 등을 기억하는 건 물론이고, 주말 계획, 휴가 일정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사모님은 "쟤는 참 너스레도 좋아"하시며 웃으셨지만 사실은 나의 그런 붙임성 있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고, 어느 날은 "J야, 너 여기 매니저 해라" 하시며 비공식적인 승진을 시켜 주셨다.
그래서 일 하면서 영어는 늘었냐고?
나는 개인적으로 알바 경험이 내 영어실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어서라기보다 학원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진짜 생활영어를 접하면서 영어를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기 때문이다.
자리 안내하기, 주문받기, 계산하기 등의 업무에 꼭 필요한 상황 외에도 최대한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려는 나의 노력도 한몫했다고 본다.
뭐든 할수록 는다.
사실 당시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은 이미 주임급의 사원인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20대 중반에 이곳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데도, 그게 이상하게 전혀 부끄럽거나 속상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직장 다녔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했고, 출근길이 매일같이 즐거웠다.
그러다 어느 날 다운타운에 나갔다가 우연히 전에 커피숍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 M을 만났다. M이 나를 유독 반가워하며, 요새 어떻게 지내는지 묻더니, 자기가 지금 영어학원에서 학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데 곧 그만 둘 예정이라며, 나보고 관심 있으면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거였다.
오! 그럼 나야 너무 고맙지!
나는 마침 일을 구하고 있었고, 학원에서 일하게 된다면 캐나다에서의 첫 오피스 잡이 될 거란 생각에 들떠서 바로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캐나다에서의 첫 오피스 잡을 구했다.
인맥관리는 세계 어딜 가나 중요한가 보다. 그때 M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나중에 또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캐나다에서도 많은 인연을 만들고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살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일은 내 적성과 꼭 맞아 재미있었다. 나는 오피스의 유일한 한국인 직원으로서 한국 학생 등록 및 상담을 주로 맡았는데, 모든 학생들이 다 친근하게 대해 줬지만, 특히 몇몇 한국 동생들은 언니, 누나 하며 살갑게 다가와줬다.
"언니, 어떻게 하면 언니처럼 영어 잘할 수 있어요?"
"누나, 저 어제도 또 술 잔뜩 마시고 새벽에 잤어요. 그래도 학원 안 빠지고 나왔어요. 잘했죠?"
"언니, 저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ㅠㅠ"
"누나, 저 여자 친구 생겼어요. 누나한테도 빨리 소개해주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당시 그 친구들보다 고작 대여섯 살 정도 많은 거였는데, 그 아이들에게 나는 (영어도 되게 잘하는) 꽤나 어른 같은 모습으로 비쳤고, 친동생이 없는 나는 그렇게 조잘거리며 다가오는 아이들이 동생 같고 너무 좋았다.
얘들아, 잘 지내니? 덕분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어.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