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야, 할머니 CT검사 결과 나왔어. 치매시래.
엄마가 담담한 목소리로 (외)할머니 치매 검사 결과를 알려왔다.
할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신 건 꽤 된 일이었다. 자꾸 이것저것 깜빡깜빡하시고, 했던 얘기를 반복하기도 하셔서 우리 가족 모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미루고 미뤘던 검사였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가깝게 지냈던 터라, 나는 유독 할머니한테 정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편지 쓰는 시간]에 할머니께 편지를 썼고, 반 친구들 앞에서 그 편지를 낭독하며 펑펑 운 적도 있었다. ("할머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ㅠㅠ" 하는 동심 가득한 내용)
지금도 할머니와 종종 통화를 하고, 한국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찾아뵙는 것도 바로 우리 꼬꼬맹이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의 치매 소식에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정희원 교수가 쓴 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중 73%는 고혈압, 당뇨병, 근감소증, 치매 등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치매 발명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꼽았다.
청력저하 8%
불충분한 교육 7%
흡연 5%
우울/사회적 고립 각 4%
외상성 뇌손상 3%
신체활동 감소/고혈압/대기오염 각 2%
음주/비만/당뇨병 각 1%
이는 전체 치매 환자의 1%는 술을 끊으면 치매 발병률이 1% 줄어든단 뜻이 아니라 술 때문에 치매가 생겼단 의미로, 술을 끊으면 치매 발명 가능성을 큰 폭으로 낮출 수 있다는 뜻.
위에서 나열한 치매 발명 원인 중 본인 의지로 조절이 가능한 게 몇 개나 될까? 청력저하나 신체활동 감소, 고혈압 등은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이며, 사회적 고립감도 많은 노인분들이 자녀의 출가나 배우자와의 이별 등으로 인해 흔히 겪게 되는 일이다.
대기오염 같은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시대 어르신들이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던 것 역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할머니 올해로 90세.
아흔 살 그 연세에 초기 수준의 치매가 찾아온 거라면, 이거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기억력도 체구도 점점 힘을 잃고 쪼그라드는 울 할머니. 그런 할머니한테 손녀인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그저 전화 한 통 더 드리는 것뿐.
할머니, 다른 건 다 잊어도 나는 잊으면 안 돼.
사랑해 ❤️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