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는 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다는 건 참 힘든 경험이다.
몇 년 전 우리 엄마는 림프종이라는 혈액암에 걸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지금은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더 체력이 좋아, 매일 같이 이곳저곳 하이킹을 다니고 계시지만, 당시에는 환자인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지켜보는 가족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겪으면서 그 전에는 몰랐던 것 몇 가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뭐 그리 죽겠는 일이 많은지, 배고파 죽겠고, 졸려 죽겠고, 피곤해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배고파 죽겠다는 표현만 봐도, 영어로는 "starve to death"라는 말이 있고, 중국어로도 "饿死了”라는 표현이 있다. 다 '죽음'을 뜻하는 표현이 들어간다.
심지어 흔하게 쓰이는 속담 중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맛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란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옆사람이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맛'이란 건 세상에 없다.
나는 이제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쓸데없는 고집 같이 보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정말 작은 것 하나에도 의지하게 되고 정말 별일 아닌 것에도 혹시나 부정 탈까 조심하게 되는 마음이었다.
특히 엄마의 투병 기간에는 '죽는다'는 표현을 어떤 식으로든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이런 표현을 쓰고 계신 분을 비판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저 스스로와 다짐했던 일일 뿐입니다.)
처음 엄마가 암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거나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같이 울어주신 분도 있었고, 돈봉투를 슬며시 건네신 분들도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뿐이다.
'내 몫'의 위로를 전하고 나면 모두 각자의 삶 속으로 돌아가기 바쁘다.
그분들을 욕하거나 섭섭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또 그들만의 걱정과 고민이 우선시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대신, 나는 그동안 얼마나 타인의 아픔에 무심했었나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힘내, 다 잘 될 거야"
"너무 걱정 마, 꼭 이겨 내실 거야"
따위의 문자 한 통을 보낸 걸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그들의 아픔과 눈물을 행여나 ‘누구나 때가 되면 겪는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진 않았는지. 싸구려 위로 하나 전하고 '나는 역시 공감도 잘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진 않았는지.
반성했고, 또 반성했다.
엄마의 암 확진 소식에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온 건 다름 아닌 서울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사시는 막내 고모 가족이었다. 막내 고모는 수십 년간 여러 병을 달고 사신 분이고, 고모부 역시 그 해 몇 년 전 암을 진단받아 온 가족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멀리서 사촌동생과 함께 제일 먼저 엄마를 찾아 주셨다.
그리고, 엄마의 항암 기간 동안 누구보다 꾸준히 엄마를 챙겨주신 건 의외로 아주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친척분이셨다. 내가 삼촌, 작은엄마라고 부르는 분들인데, 알고 보니 작은엄마가 유방암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투병기간 동안 입맛 없는 엄마를 위해 이것저것 좋은 먹거리를 계속해서 보내주시고, 정말 꾸준히 힘을 보태주셨다.
엄마의 완해* 판정 직후, 친언니의 결혼식이 있었다.
*완해란: ‘완전관해’의 줄임말로 증상이나 병변이 소멸된 상태를 뜻함. 이후 5년간 재발되지 않을 경우 ‘완치’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그 식장 로비에서 작은엄마를 마주쳤을 때, 언젠가 만나면 꼭 드리고 싶던 감사 인사 대신 눈물이 먼저 주르륵 흘러나왔다. 작은엄마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이 글을 보시진 않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삼촌과 작은엄마, 그리고 그 외 많은 관심과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 내 차례다. 주변 지인들이 힘든 시간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둘러보고, 앞으로 혹시 그런 시간을 겪게 될 지인들에게는 조금 더 진심이 담긴 힘을 보태주는 내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사진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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