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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Jan 23. 2020

설 명절 사흘 전의 아버지 제사 그리고 우리 집 딸년

엊그제는 아버지 기일이었다. 설날 사흘 전이면 찾아오는 아버지 제사가 설 명절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아버지 기일이 음역 27일이니 설 나흘 전이지만 나도 모르게 ‘설 사흘 전’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랫녘에서는 30일 저녁 차례상 겸 조상 제사를 지내는 터라 설이 음력 12월 30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설날 아침에는 차례상 대신 떡국만 간단히 차려놓는다. 


노모와 형수님 그리고 제수씨가 온종일 아버지 제사 음식을 장만하였다. 구순이 가까운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제사상을 스스로 챙긴다. 자식들이 말리지만 그것이 어머니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는 힘이 되기도 해서 하는 데까지 하시도록 한사코 만류는 안 한다.      


제사상을 다 차려놓자 누나와 매형이 들어섰다. 바로 옆 동네 사는 누나는 다짜고짜 아버지 기일 지키기도 힘들어서 내년부터는 안 다니겠단다. 설 사흘 전이니 금세 또 와야 하는데 왔다 갔다 하기 귀찮다는 뜻이다. 아무리 피를 나눈 누나지만 어찌 세상을 저런 생각으로 사나 싶어 가엾기조차 하였다. 지금껏 제사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아니고, 좀 일찍 와서 음식 장만하는데 도와주는 것도 아니었다. 명절이든 제사든 평생 손님처럼 다녀가곤 하는 누나다. 시골에서 생활하다 한 번씩 올라오는 노모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는 법이 없는 누나이니 그러려니 한다. 제사가 끝나고 음식을 싸주면 마다 않고 다 챙겨가는 우리 예쁜 누나….      

나와 내 동생은 그런 누나에게 단 한 마디 싫은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우리끼리‘우리 집 딸년 맞어?’ 하며 킥킥거리고 만다. 어머니도 누나에게 어떤 기대도 안 하지만 딸내미라고 시골에서 챙겨줄 것은 빼놓지 않고 챙겨준다. 어머니가 누나에게 서운한 게 있어도 “우리 집 딸년은 참….”이 전부이다. 꼭 거기까지다.


누나의 성격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다. 동생들에게도, 가족 누구에게도 잔소리 한 번 한 적 없다. 어찌 보면 무관심이랄까. 부창부수라더니 매형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친정 식구에게 냉갈령스럽다 싶어도 만나면 서로 걱정도 해주며 정답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누나가 다녀갈수록 일찍 세상을 떠난 여동생이 그리워진다. 누나와는 성격이 전혀 달라 살갑기 이를 데 없었고, 어머니를 비롯해 형제들을 챙기는데 인정이 넘치던 누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누나가 그런다 해도, 친정에 폐 한 번 끼치는 일 없이 풍족하게 잘 살아주는 것만도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더구나 3남2녀의 다섯 형제 가운데 형과 누이가 거푸 세상을 떠나버린 터라 어머니의 그 딸년(?)이 우리에겐 얼마나 귀한가.     

아무튼 다들 명절이 외롭지 않았으면 싶다. 좀 풍족한 사람들에게 명절은 말 그대로 축제 같은 연휴가 되겠지만 갈수록 명절이 부담스러워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명절은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다. 미풍양속으로 존대를 받아온 우리 고유명절은 세월을 거듭할수록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느낌도 없지 않다. 

통장을 탈탈 털어 직원들 선물이며 떡값 챙겨주고 나니 내게 남는 것은 한숨뿐이다. 그래도 밝은 표정의 직원들 얼굴을 보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내일부터 정식 연휴라 오늘은 다들 일찍 퇴근을 시켰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은 나는, 책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인터넷에다 부지런히 홍보 포스팅을 올린다. 작년 설 연휴 때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내년 설에는 외롭지 않겠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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