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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Apr 01. 2023

아침 글쓰기와 단상

나의 키보드는 치유의 힘을 가진다. 

어제는 상당히 피곤한 일과를 보내었다. 행사장을 세팅할 일이 있어 분주히 아침부터 짐을 나르다 허리를 삐끗했다. 와중에 사다리를 타고 높은 것에 무언가를 뚝딱 거리며 고정하는 일을 하다 보니 더 아파왔다.

매우 노곤하면 잠깐의 쪽잠도 고통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어제의 내가 그랬다. 집에 돌아와 까끌거리는 밥을 먹고 소파에서 노닥거리다 몸을 뉘었다. 전투적으로 잠을 청해 회복을 염원했다.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말았다. 1시간 일찍 잤는데 2시간 일찍 일어나는 건 반칙이다. 만우절이자 토요일인 오늘도 일을 하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환절기 인지 코와 입 주변이 매우 건조하고 각질이 길길이 날뛴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감기라는 손님이 곁눈질을 한다. 애써 눈치를 피해 보지만 아른한 건지 나른한 건지 몸에 자신이 없는 것을 보면 컨디션이 나쁘거나 아플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부디 빗나가길.


이른 새벽 토각토각 자판을 두드리는 것에는 왠지 모를 치유의 음절이 있다. 마음에 드는 키보드라 그런지는 몰라도 찰칵과 찰박의 중간정도 되는 키음은 나의 아침 글쓰기에 경쾌함을 실어준다. 사방이 조용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는 터라 이 시간은 온전히 방해받지 않을 유일한 시간대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더 소중한 시간이 되는 기분을 느낀다. 고통 없이 아프지 않은 마음의 시간으로 들어선다는 건 몸도 이끌려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얼마 전  CRPS 환자분의 브런치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혈흔이 난무하는 장면이 아님에도 글로 접한 고통은 더 깊게 와닿는다. 오늘은 그분의 병이 완치되기를 기도해 본다. 


벚꽃이 만발했다. 여의도를 지나치는데 수많은 인파가 손에 한 짐씩 들고 한경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쁜 하늘과 벚꽃을 사진 속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쌀쌀한 공기에도 돗자리를 펴고 강변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이가 들어 낭만이 없어지는 건 현실적인 걱정을 너무 무겁게 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증거인 듯하다. 사람 많은 곳에 가려면 주차 걱정부터 든다. 번잡함과 혼란 와중에 보이는 무질서에 대한 염증 이런 것들이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낭만이 사그라든 삶이라는 생각에 약간은 서글퍼졌다. 사진 한컷에 담긴 예쁜 벚꽃처럼 내가 즐거운 부분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네모나게 잘라내는 게 더 나은 인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인파를 바라보며 운전석에 앉아 든 생각이었다. 


라이킷을 누르는 시간을 보면 누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 몇 시까지 잠들지 않았는지 실시간으로 보인다. 약간의 알람 기능이 되는 것인데 예전의 싸이월드 감성에 비추어 보자면 아직도 안 자니? 벌써 일어났어? 라며 말을 걸어봄 짐 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상당한 실례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글을 좋아하지 말을 걸만큼 친밀하다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공고해져 가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삭막하거나 정이 없이 산다는 것과는 거리가 멈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오묘한 구석이 많다. 작은 관심조차 두드러기를 일으키면서 관심이 아예 없을 때는 관심에 목마른 티를 슬며시 내곤 한다. 그건 그가 그런 사람이라기 보단 그의 마음이 잠시 요망한 끼를 부린 것이다. 우린 누구나 요망하고 귀여운 면이 있다. 


딸아이는 설명을 할 때 뭔가 '본격적인' 자세로 설명을 하려는 의욕을 보인다. 


"자! 학교에서 오빠 교실을 찾아갈 때는 말이지? 자! 여기서!부터 이러어어어어케 가면."


음절마다 강조의 포인트가 얼마나 많은지 그럴 때마다 이야기가 아주 길어질 거라는 생각에 와이프는 알았다며 말을 막는다. 나는 그런 순간 딸아이의 시무룩한 표정을 읽어내곤 손사래를 치며 와이프를 막아선다. 

"아냐 아냐 설명 충분히 해줘 들어보자."라며 좋은 아빠의 역할을 자처하곤 하는 것이다. 사실 나 또한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딸아이의 수화와 같은 손동작과 진지한 표정이 귀여워 막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손동작과 제스처가 매우 크고 다양하다. 소위 각과 절도가 잡혀있는 맺고 끊음이 있는 손동작이다. 양손을 벌려 자!라고 할 때의 그 비장한 표정과 스냅이 참 좋다. 쪽진 머리에 초롱한 눈빛, 동그란 뒤통수가 매력적인 딸아이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참 궁금하다. 


오늘은 만우절이다. 거짓말같이 오늘도 눈뜨고 삶이 이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가 기념할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 속에 살더라도 공고히 나를 지켜가는 수행의 자세와 태도를 기념해야 한다. 기념비적인 하루를 살아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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