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흘러갔다.
지난봄을 생각하면 푸르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봄 같이 젊은 날을 청춘(靑春)이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젊은 시기를 생각해도
지난 봄날의 그때를 생각해도 푸르지 않았다.
봄꽃이 피는 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보통은 푸르기 전에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꽃이 핀 다음 푸르게 된다.
푸르름보다 화사함이 먼저다.
그렇다고 봄이 전혀 푸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새싹이 피는 땅은 봄이 되면 점점 푸르러진다.
우리의 젊은 그때는 어떠한가?
너무 이쁘다.
잘 생기고, 멋지고...
생물학적으로 가장 화려하다.
하지만 푸르름의 희망보다는
현실에 대한 막연한 탄식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크다.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삭막하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나의 젊음은 화려한 한강의 야경과 같이 푸르름은 있으나 어둠 뒤에 숨어 있었다.
나는 생명력, 활력소, 희망으로 어둠에서 다시 낮으로 돌아온 것 같지 않다.
어둠을 이겨낸 것은 고통으로 인한 내성이고 그러다 보니 어둠이 낮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낮이 길어졌다.
봄이 지나간 지금,
청춘이 흘러간 지금,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 이겨내고 산 것 같다.
우리 젊은 친구들에게 이러한 것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나도 청춘은 푸르다고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