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나를 위한 계절이 왔다. 이제 살찔 일만 남았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배달 강국에서 야식 문화를 즐기는 선두에 우뚝 서 있었다.
다행히 이스탄불에도 배달음식 앱은 기가 막히게 잘되어 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예멕 세페티(yemek sepeti)'는 yemek=음식, sepet=바구니, 즉 ‘음식 바구니’ 라는 아주 깜찍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잠깐 작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튀르키예의 상점 이름들은 귀여운 면이 있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거나 돌려 말하기보단 명쾌한 직역을 좋아하는가 보다. 시원시원한 터키사람들 답다. 가장 큰 로컬 커피 체인점으로 '카흐베 뒨야스(kahve dünyası)'가 있다. 카흐베=커피, 뒨야스=세계, 즉 '커피의 세계' 라는 뜻.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의 이름은 '시미트 사라이(simit saray)'. 시미트=터키의 전통빵, 사라이=궁전, 즉 '빵 궁전'이라는 뜻이다. 피자집의 이름은 '피뎀(pidem)'. 피데=길쭉한 터키식 피자, 여기에 일인칭 소유격 'm'을 붙임으로써 '나의 피데'라는 의미다. 이 밖에도 닭고기의 세계, 나의 파스타, 케밥과 함께, 같이먹자 버거.. 등등이 있다.
그러나 배달음식 앱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휴대폰에 코를 박고 한참을 정독해도 시켜 먹을 만한 게 없다.
튀르키예는 분명 미식의 나라다. 모두가 알고 있는 케밥도 있고, 한국의 육개장을 닮은 수프 ‘베이란 초르바’도 맛있다. 꿀을 곁들인 카이막도 천상의 맛이고, 얼굴만 한 감자에 토핑을 올려먹는 '쿰피르'도 별미다. 터키식 튀김으로 안에 치즈, 고기, 시금치 등이 듬뿍 들어간 '뵤렉'은 따듯할 때 차이와 곁들이면 궁합이 끝내준다.
확실히 터키 음식은 다양하고 맛있다. 하지만 어찌 한국인이 야식으로 케밥을 먹으리오...
물론 여기도 맥도널드 버거킹 피자헛 파파존스 등등 한국에 있는 건 다 있다. 하지만 어찌 한국인이 야식으로 그런 것들을 먹겠는가!
우리가 먹고 싶은 건 고추를 넣고 바사삭하게 구운 치킨이며, 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빠진 떡볶이의 빨간 맛인 것을.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감탄이 절로 나는 묵은지에 싸 먹는 매운 족발이며, 탱글한 소면을 돌돌 말아서 먹는 매콤 달달한 골뱅이일 뿐이다.
한국에 있을 때 족발을 시켜 먹는 단골집이 있었다. 족발도 족발이지만 묵은지가 정말 일품이었다. 워낙 인기가 많아 재료소진이 빨랐는데, 우리가 한발 늦게 전화하면 사장님이 더 안타까워하셨다.
"아이고오~~ 조금만 일찍 전화 주시지!! 다 나갔어요…" 그러면 나도
"아이고오~~ 다음엔 더 일찍 전화해볼게요."
하고 끊는다. 그러고 나면 영화의 반전을 본 것마냥 살짝 소름이 돋았다. 늘 의아했던 것은 이 부분이다.
근데, 왜 전화를 받으시지?
그냥 전화 안 받고 퇴근하시면 되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것의 정체는 ‘친절’인 것 같다.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에겐 손님이 단순 ‘고객’이 아니라 내가 맛있게 삶은 족발을 먹이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족발을 놓친 아쉬움을 공유해 준 사장님의 목소리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소하지만 고마운 일이다.
오늘 밤에도 나와 남편은 느끼한 음식들이 한아름 담긴 바구니 ‘예멕 세페티’ 앱을 한참 들여다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평범한 후라이드 치킨을 주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아… 이 사람들은 먹을 줄을 몰라."
뭐 하나를 할래도 세월아 네월아, 감감무소식인 터키에서 음식 배달만큼은 한국의 배민 뺨친다.
주문한 지 몇 분 안 됐는데 금세 1층에서 반가운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가 행복의 봉다리를 바스락거리며 내민다.
“아피옛 올순! (맛있게 드세요)”
우리는 이 봉지 안에 족발과 묵은지가 들어있다 상상해 본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묵직한 종이상자 안에 든 건 튀김옷이 두터운 치킨이다. 나는 말없이 냉장고로 달려가 한국에서 공수해 온 양념치킨 소스를 가져온다. 남편은 아껴야 된다며 그마저도 안 찍어 먹는다.
나는 "뭘 아껴, 그냥 먹어!!" 라고 말하면서도 남편이 먹지 않음에 은근한 안도감을 느끼고 만다.
누구든 궁해 봐야 소중함도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먹고 싶은 그 순간에 정확히 먹고 싶은 그것을 먹는 행복! 천상의 음식을 만들어준 분들과 그것을 빛의 속도로 배달해 준 분들께 감사한다.
내 돈으로 내가 사 먹는데 뭐가 고맙냐고?
모르는 소리다. 그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