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에 지낼 적 주인 코너가 알려준 해변이 한 군데 있었다.
바로 ballyloughane 해변(베리러게인)으로 게일어로 ‘호숫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때는 여건이 안 돼서 찾아 가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기억을 떠올려 가게 되었다.
마침 내가 살던 곳에서도 충분히 걸어서 갈만한 거리였다.
바다를 좋아하고 해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당장 길을 나섰다.
바다/ 해변은 땅의 끝자락이기에 어딘가에서 끝에 서 보았다는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내륙보다 지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색깔과 그 공기, 바람은 매력적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해변까지 가려면 주택가를 거쳐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주 고요해서 그 때문인지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위험하지는 않으니 곧장 길만 따라 걸으면 이런 해변을 마주할 수 있다.
사실 관광지도 아니고 그냥 마을 한편에 있는 해변으로 사람도 없이 고요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갈 때마다 강아지 산책시키는 모습을 종종 봐 왔기에 추측 건데 아마 이곳 주민들에게 반려동물과 산책시키러 이곳에 오는 건 아닐까 싶었다. 반려동물과 집 근처 해변에서 산책이라 그 또한 낭만인 듯하다.
이곳에 처음 오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높은 빌딩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공간.
사실 해변이라 하면 반짝거리는 하얀 모래사장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해변은 모래사장보다 자갈이나 머드로 되어있다. 그래서 물가까지 다가가기는 사실상 어렵다. 시도는 해 봤지만 신발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아 포기했다.
게다가 안 그래도 바람이 강한 골웨이지만 해변에 완전히 인접한 곳은 매번 폭풍처럼 바람이 분다.
마음이 답답할 때 뭔가 뻥 뚫렸으면 할 때 가기에 제격인 장소였다.
뭐가 특출 나게 근사한 곳은 아니다, 다만 모두 자연이 만든 신비로운 광경의 연속이었다.
하늘색, 구름, 햇빛, 바닷물 그리고 자갈에다 바람까지.
종종 책을 가져가 읽어보려 했지만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통에 책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정말 고립된 세상에 생각을 비우는 곳이다.
어느 날은 지나가는 강아지를 만난 적이 있다. 덩치는 큰 녀석이었는데 세상 순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인사라도 하려는 듯 나에게 다가와 코를 들이밀었고 나는 그 귀여움에 매료되어 지켜만 보다가 강아지가 지나가고 내 바지를 보니 강아지가 코로 남겨놓은 모래덩이를 발견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귀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위는 좋아하는 사진으로 그저 하늘과 풀과 돌인데 그 조화가 근사하다.
아니나 다를까 풀도 바람의 힘에 못 이기고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 그 바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갑자기 저녁시간에 산책을 하고 싶어 길을 나선 날이 있다. 이렇게 멋진 해변을 근처에 두고도 게으름에 자주 찾지는 못했다.
딱 날을 잘 잡았는지 사방으로 핑크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쉽게도 카메라에 그 선명한 핑크빛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내 눈에 직접 비친 신비로운 노을은 잘 간직되어 있다.
늦지는 않았는지 노을이 마침 지고 있었다. 여전히 반려동물들과 산책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이곳만은 공기가 참 느리고 무해하게 흐르는 듯했다.
꽤 발달된 인프라에 높은 건물 사이에서 경쟁이 일상인 삶을 살아오다가 이런 한적함을 일상에서 마주하니 뭔가 묵직하며 강렬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왔다.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거구나.
과연 내가 바라던 삶에 가까웠다.
이름조차 낯설면서도 신비로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해변을 비밀 장소로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