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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Jul 05. 2022

이념 - 파이어족, 못되어도 괜찮아

직장생활 영감사전 25 - (10) 이데올로기

"한나 아렌트가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을 썼던 이유는 단지 지나간 과거를 살펴보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 시점에 이미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가지 요소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 고전에 대한 정의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그 책의 이름을 알고 있고, 그 책을 누가 썼는지도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는 책. 예를 들면 공자의 '논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괴테의 '파우스트' 같은 책들이지요. 


2. 한나 아렌트가 쓴 '전체주의의 기원' 역시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책입니다. 한나 아렌트 역시 평소에는 들어볼 법한 이름이 아닙니다. 대입 논술 시험에 자주 등장하곤 했던 '악의 평범성' 주제를 다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까지 언급해야 그나마 고객을 끄덕이는 분들이 조금 늘어날 것입니다. 


3. 지난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한나 아렌트의 저작들을 바탕으로 '지금 어떻게 살까? 선동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를 감수했던 철학자 김선욱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비스듬히 누워 보다가 어느 순간 정자세로 꼿꼿이 앉아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4. '전체주의'는 아주 처음 듣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체주의란 무엇이냐?'라고 말한다면 대체로 '음... 좀 나쁜 거?' 이상의 답을 하기 어렵지요. 아렌트는 과거의 역사적 사례를 바탕으로 전체주의를 '체계적인 거짓말을 바탕으로 한 체제'라는 설명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체계화된 거짓말에 바탕한 체제라면 어느 시점에는 결국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5. '소련 망한 지가 언젠데 전체주의가 2022년의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 궁금증을 갖는 시청자들을 위해 김선욱 교수는 우리 일상 속 전체주의적 요소가 존재하는 사례로서 입시지상주의와 금전만능주의를 듭니다. 몇 년 전 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아이들과 학부모의 모습은 즉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하면 인생은 끝난다'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못했을 때 수반되는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설명입니다. 


6. 또한 김선욱 교수는 '충분한 돈이 없으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관념 역시 이데올로기라고 말합니다.  충분한 돈과 좋은 직장이 없으면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부분에도 전체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프로그램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코로나 전후 더욱 강화되었던 경제적 자유와 파이어족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연장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 '전체주의의 기원'은 1951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역시 1963년에 출간되었으니, 둘 다 반세기가 훌쩍 넘은 텍스트들입니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시간을 거슬러 다시 재조명되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들은 과거를 너무나 쉽게 잘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8. 학부시절 정치학을 전공했음에도 한나 아렌트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통받을 때면 전체주의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며, 언제고 시간을 내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9. 어쩌면 직장생활 속에는 이렇게 늘 마주치는 부조리한 순간들이 많은가,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왜 이렇게 조기 은퇴하고 FLEX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많은가 하는 생각으로부터 소중한 내 정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그 속에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참고한 콘텐츠

차이나는 클라스 249회 - 지금 어떻게 살까? 숭실대 김선욱 교수 편 

(JTBC, 2022년 7월 3일)

* Photo by Dave Ruc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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