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내 서툰 떡볶이가 맛있는 이유

아내의 입덧을 제압한 맛

by 아빠 민구

많이 늦은 밤. 입덧으로 고생하던 아내,


"여-보- 나- 떡.. 볶. 이..."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면서 뚝다라닥닥 간도 안 보고 만들어낸 떡볶이.


"휴- 다 됐어 여보~ 와서 좀 먹어봐"


나는 아내가 맛있게 먹을 것인지, 냄새만 맡고 '우-욱-' 하며 고개를 돌릴 것인지 걱정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기다린다.


입덧은 사실 떡볶이처럼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듯, 아내는 후루룩 쫩쫩 떡볶이 한 냄비를 비웠다. 야호! 성공이다.


나는 자랑스러움과 의아함을 반반씩 섞어 아내에게 되묻는다.


"아니, 어떻게 간도 안 보고 만들었는데 이렇게 맛있지?"(나는 음식 할 때 간을 안 본다.)


"34년 먹어본 경험이지 - ㅎ"


그러다 문득 34년 간 어떤 떡볶이를 먹으며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유명한 떡볶이는 누나표 떡볶이다. 7살 위로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누나는 떡볶이를 참 맛있게 만들었다. (떡볶이만 맛있게 만드는 것 같긴 하지만)


더불어 나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떡볶이는 어린 시절 엄마의 떡볶이다. 그러다 문득에 문득을 이어 엄마가 떡볶이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가 초등학교 앞에서 슈퍼마켓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그땐 엄마 몰래 버터링 먹는 게 재미였는데) 경제적으로 곤란해지면서 점점 시골로, 점점 외곽으로, 점점 지하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엄마는 누나 학비를 대기 위해, 또 얼마라도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하루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려서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집에서 부업으로 무슨 전단지를 접거나 열쇠고리를 조립하는 일도 하셨고, 좁은 동네길 귀퉁이에서 작은 옷가게도 하면서 일수를 내셨다.


그땐, 그 일수 아줌마가 와서 엄마가 하루 종일 고생해서 번 몇만 원을 수금해가는 게 참 미웠었다. 난방도 제대로 안되고, 갓길에 붙어 고작 몇십 센티 앞으로 버스가 지나가면 유리문이 덜컹이는 그런 허름한 옷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엄마는 한 밤중 대중교통을 타고 두세 시간 동대문 상가에 가서 양손 가득 옷을 떼 오서 새벽차를 타고 돌아오셨고, 그 옷을 몇 벌 팔아 번 고작 몇만 원이었다. 일수 아줌마가 야속했다.


그리고 더 외곽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 공장단지 판자촌에 있는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떡볶이 가게를 하셨었다. 떡볶이 가게도 마찬가지로 도로에 바로 붙어있어서 트럭이 지나가면 창이 흔들리는 반 지하 형식의 가게였는데, 맛은 참 좋았다.


다른 친구들에게 특별히 내세울 게 없었던 나였지만, 버스를 타고 하교를 하면서 친한 친구들하고 엄마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는 시간은 나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맛있어했고, 매일같이 와서 먹었다. 나도 그 매콤 달콤한 떡볶이에 야끼만두랑 오징어튀김을 버무려 먹으면 늘 만족스러웠다.


작고 좁은 가게였지만 떡볶이는 늘 자랑스러웠다. 누나의 학비와 가계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는 그런 자랑스러운 맛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누나의 떡볶이를 먹으며 자랐으니 내가 부대를 옮기면서도 늘 찾는 음식은 떡볶이 었다. 말하자면 나의 소울푸드였다.



육사에 입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가족과 늘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군인이 된 나에게 엄마-누나의 떡볶이는 명절 음식이 되어버렸다. 사실 명절이라고 집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 집에 가면 먹는 음식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중위 시절 고성에서 지낼 때는 퇴근길에 꼭 떡볶이 1인분에 김말이 2000원어치를 사다 맥주를 한 캔 깠다. (그때 몸매가 망가졌다. 원랜 이렇게 뚱뚱하지 않았는데. 정말!)


정말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떡볶이를 먹었었는데, 아주머니와는 친분이 높아져 아주머니께서 명절에 떡국을 챙겨줄 정도였다.


몇 년이 지나, 결혼 후 기억을 되짚어 찾아간 고성 여행에서 그 분식집을 찾았는데, 그 아주머니가 여전히 날 기억하시는 것을 보며 아내가 신기해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34년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한 떡볶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레시피도 몰랐던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대충 고추장이나 물엿 정도 들어가겠지-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떡볶이를 주문한 그 순간,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내 몸이 반응했다. 순간적으로 고추장을 풀고 각 종 양념과 야채를 툭툭 넣었다.


눈으로 봤을 때 적당한 질감과 걸쭉함을 짚어냈고, 냄비를 들어내 식탁으로 가져갔다.


아내의 철통 같은 입덧을 뚫고 위장을 공략하는 떡볶이를 보며, 나도 젓가락을 들었다. 내가 먹어도 웬만한 분식점에서 파는 것보다 맛이 괜찮았다.


아내가 말한 것처럼 34년 먹어 본 감이 어디 안 갔나 보다. 군대에서는 '경력'을 비속어로 '짬'이라고 표현하는데, 나의 떡볶이짬이 찰만 큼 찬 것 같았다.



아- 20년도 전으로 돌아가서 엄마 떡볶이에 야끼만두 버무려 먹고 싶다.

크, 맥주까지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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