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1
딸과 통화 중 눈물이 흘렀다. 정작 딸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계속해서 말해도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출산을 위한 제왕절개 수술이라고는 하지만, 멀쩡한 생살을 잘라내는 개복수술이다. 소중한 당신 딸이 결혼을 하더니 두 번의 자연 분만에 이어, 세 번째 제왕절개를 앞두고 있다.
임신한 딸은 매일 밤 끙끙 앓고 온몸에 변화가 생기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고 머리털과 피부가 푸석푸석해졌다. 아름답게 키워놓은 귀한 내 새끼가 많이도 지쳐 보인다. 그리고 아홉달을 고생해 이제 배를 가른다고 하니 눈물이 나온다.
"그래도 나 수술한다고 울어주는 건 엄마밖에 없네.."
엄마의 울음에 딸은 머쓱한지 한 마디 하고는 조용히 엄마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다. 지켜보던 남편은 덩달아 머쓱하다. 아내 고생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녀가 태어날 것만 생각하며 기쁨과 설렘에만 도취되어있었던 자신을 돌아본다.
여자 배에 큰 수술 자국이 남는 건 누구를 위한 선택일지 생각해본다. 결국엔 살을 찢는 고통은- 마취로 잠들어있을 여자의 고통도, 기쁜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남편의 고통도 아닌 여자 엄마의 고통이었다.
엄마와 여자가 티격태격하긴 해도, 여자의 36년 삶의 모든 모퉁이마다 '귀한 내 새끼'라며 걱정하는 건 언제나 엄마뿐이었다.
엄마#2
아들 정말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하루 종일 돈 버느라 고생했을 텐데, 집에 오자마자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이 육아며 가사며 덤벼드는 것을 알고있다.
잠은 제대로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영양제라도 좀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가 걱정이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잘하려고 할 텐데 그게 참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젠 혼자 벌어 여섯 식구가 먹고살아야 하니 더 분주하고 더 피곤할 텐데, 손주도 이쁘고 며느리도 고생이지만 당신 귀한 새끼 고생하는 건 참 딱하다고 생각한다.
넉넉하기라도 하면 뭐라도 하나라도 더 해줄 텐데,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그래서 엄마는 남자가 어릴 때는 물론이고 군인이 되고, 독립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잘 살고 있는데도 기도를 줄일 수 없었다.
가끔 하는 통화에서 무뚝뚝한 아들 녀석이 툭툭 내뱉는 말에 화도 나고 상처도 받지만, 사랑은 내려서 흘러가는 것이고 결국 자식 앞에 장사 없는 부모의 삶은. 아들도 자식들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3
여자는 그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로부터 얻는 행복이 막대하다 보니 아이를 또 가지고 싶어 졌다. 셋째를 갖기로 계획했는데 축복이 넘쳐흘러 넷째까지 얻게 되었다. 이제 네 아이의 엄마라니- 라며 웃음과 한숨이 같이 터져 나왔다.
집도 작고 수입은 한정되어있으니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18평 작은 집에 여섯이 살아야 하고, 침대는 다섯 개가 되었다. 집에는 거실이 없어졌고 복도가 생겨났다. 세 번째 출산을 앞두고 좁은 복도 사이에 앉아 출산 가방을 싸며 여자는 생각했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지만 아이들을 갖는 건 세상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고 저릿저릿한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고통에 대한 걱정보다는 설렘과 기다림의 매일을 보냈다.
뱃속에 내 귀한 새끼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다치거나 아파도 일체의 약을 먹거나 바르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 출산이지만, 입고 쓰고 사용하는 모든 것을 조심했다. 세상 모든 엄마들처럼 아이들만을 위해서 모든 조건을 조정했다.
뱃속에 두 녀석뿐만 아니라 배 밖에 두 녀석에게도 소홀할 수 없었다. 내 귀한 새끼들이 새로 태어날 동생들로 인해서 상처 받거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여자는 매일 고군분투하고 매일 쓰러져 잠이 든다.
가지고 있는 사랑을 '나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여자는 더 많은 사랑을 만들어 낸다. 여자는 그렇게 더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면서 더 많은 사랑의 샘이 되어간다.
번외 : 남자#1
남자는 남편이고 아들이고 사위다.
엄마가 낳아주셨고, 다른 엄마가 낳아주신 여자와 결혼했고, 엄마가 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남자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세 명의 엄마를 보면서 '사랑'과 버무려져 있는 다양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낀다.
한때는. 새끼들은 왜 하나 같이 어미만 찾는 것일까- 라는 의문점이 들었었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많이 놀아주면 아빠도 자식들에게 엄마와 똑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었다.
하지만, 딸을 위해 눈물 흘리고 아들을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고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남자가 따라갈 수 없는 어떤 부분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남자, 여자, 엄마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넷이나 얻고 나서야- '엄마가 있다는 것은 내 귀한 새끼들이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 혹은 '내 귀한 새끼들이 있다는 것은 엄마가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