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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출산율 4.0
07화
출산하기 딱 좋은 날
오늘!
by
아빠 민구
Jun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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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종일 비가 오더니만 오늘 아침은 맑게 빛났다. 시원한 바람은 규칙적으로 흔들거렸다. 애들도 잘 자고 일어나서 잘 먹고 씩씩하게 등원 길에 나섰다. 당분간 못 본다고 석별의 인사를 하였으나 덤덤한 듯 가볍게 버스에 올랐다.
몇 달째 불편하고 힘들다고 호소하던 아내도 간밤에 잘 잤다고 했다. 똑바로 누워서 자는데 숨 막히거나 팔다리가 저리지 않아, 순간 "애가 없어졌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어젯밤은 그렇게 첫째, 둘째와 끌어안고 잤다. 나는 소파에서 잤다.
출산 가방을 차에 실었다.
5박
6일이라고 하니 챙길 것이 많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아내를 기다렸다. 괜히 떨리는 게 시험 직전 같기도 했고 소풍 전날 같기도 했다. 휴대폰 캘린더에선 '출산일'이라는 알람이 울렸다. 아내가 차에 올랐다.
차는 경쾌하면서 또 육중하게 병원으로 달렸다. 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하천과 가로수들은 맑고 밝았다. 심장은 크레센도를 반복하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 멈춰있는데 아내가 물었다.
"넷을 생각이나 해봤어?"
"여섯도 생각해봤지"
"애를 왜 많이 낳고 싶어?"
"복닥거리고 살면 화목할 것 같지 않아?"
넓은 마당에서 아이들이 뒹굴고 뛰어노는 장면을 생각하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나와 아내를 닮았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튀어나왔다. 병원까지는 신호 두 개.
주차장에 내리니 실감이 났다.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마는, 예전에는 애 낳으러 가면서 신발을 벗을 때 '내가 저 신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는 걱정인데 아내는 아이들 만날 생각에 계속 설렌다고 한다.
서울 아니고 대전에 있는 서울여성병원
우리는 병원으로 들어갔고, 몇 가지 검사 후 나는 회복실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내와의 포옹 후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고작해야 몇 미터를 걸어갈 뿐인데, 아득히도 먼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회복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내를, 아이들을, 내 앞에 펼쳐질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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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자 남편, 네 자녀의 아빠로서 이야기합니다. 현실에 대한 감당, 틀 없는 상상, 평범하지만 독창적 일상, 무엇보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감상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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