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여보, 이따 애들 재우고 잠깐 얘기 좀 해

마음의 여백

by 아빠 민구




아이들을 재우려 방에 들어간 나의 뒤통수에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않게 아내가 한 마디 뱉었다.

저녁 열 시, 아내의 호출이다.


"여보, 이따 애들 재우고 잠깐 얘기 좀 해"


뭐지. 뭐지. 뭐지.......


되짚어봐도 잘못한 건 없는데, 왜 이렇게 찜찜한 걸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아내와 나 모두 잠이 들어버렸다. 물론 밤새도록 쌍둥이들이 삐약삐약거렸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비몽사몽 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중간에 모기의 공습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아내의 면담요청은 시행되지 않았다.


평소에 범법을 저지르지 않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부르면 뭔가 기분이 쎄- 한 게 걱정부터 된다.


아침에는 헐레벌떡 아이들 등원 준비를 시켜놓고 그대로 나와버렸다. 아내가 한다는 그 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이라면 다시 언급하겠지. 휴-


아침에는 뭐가 또 그렇게 기분 나빴는지, 기저귀를 가는 나를 향해 지적하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나도 아침부터 어이가 없어서 '아침부터 그렇게 말해야 하냐'라고 항전했다. 하마터면 또 스파크가 튈 뻔했다.


밤새 잠도 잘 못 자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매일매일이 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니 조금만 심기가 불편해도 불꽃이 튄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아마도 마음의 여백이 좀 부족한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내도 안쓰럽고 나 스스로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불씨도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필요한 내전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더불어 단 하루의 휴가 만이라도 허락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없이 아내와 둘이서 삼겹살도 먹으러 가고, 사우나도 가고, 쇼핑도 하고, 근사한 식당도 가고, 밤늦게까지 영화도 보고- 말이다.


그렇게 해 본 지가 벌써 몇 해는 지난 것 같다. 그러니 마음의 여백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까. 문서 작업할 때처럼 단축키 몇 번으로 여백을 늘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루하루 이어지는 육아와 가사의 어항 속에서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어떻게 보면 가장 편하다는 이유로 가장 적은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칼진 혀를 반성한다. 무디 말하고 무디 들어야 겠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부디, 오늘 낮에는 쌍둥이들이 좀 잘 지내서 아내 스트레스가 떨어져 있기를.

퇴근 후에 아내의 호출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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