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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Oct 22. 2021

어리-.

의준씨와 민구씨의 이야기.


국어 국문학과도 아니고 한글학자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얼핏 생각해보니 '어리-'라는 말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음. 어리숙. 어리둥절. 어리바리. 어림짐작. 얼간이. 얼빠짐. 얼렁뚱땅.


실제로 쟤들이 다 같은 어근과 기원을 가지고 있는 묶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난 한글 잘 모르니까) 잠깐 대충 생각해보니까 대체로 그렇게 묶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묶인 저 친구들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미숙하다'라는 의미는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어리-'는 '미숙'이라는 부등식이 머릿속에 성립되었다.


그와 동시에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어린이 '의준씨'가 생각났다. (참고로 의준씨는 우리 집 둘째 아이다.) 의준씨는 '어린'나이의 '어린이'로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분이다. 부등식을 고려해 '어린'을 '미숙'으로 치환해 다시 말하자면, 의준씨는 미숙한 나이의 미숙한자로서 미숙함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아직 성숙되지 않은 의준씨에게 내가 너무 가혹했나- 하는 반성이 든다. 아직 신경계통이나 근육이나 지각 능력이나 다양한 종류의 기능들이 온전히 성숙되지 않은 미숙한 분이신데, 나의 기준이 나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지는 않았을까. 나의 눈높이는 의준씨의 머리 꼭대기보다 세 뼘은 더 높이 있을 텐데 말이다.


성숙되지 않은 작은 손과 여린 근육, 부정확한 운동신경계통 상의 문제로 물을 따르다가 좀 쏟는 건 '그럴 수 있는 일' 정도가 아니라 '당연한 일'인데. 나는 왜 그 물을 좀 흘린 의준씨에게 짜증내고 잔소리를 하는가-


동생이 이제 막 잠들어 깰 수 있으니 조용히 좀 하라고 삼백 번쯤 말해도 수시로 흥분해서 삑삑 소리치며 깔깔거리는 저 완숙하지 못한 의준씨. 나는 왜 타박하는가-


킨더 초콜릿을 벌써 두 개나 먹었으니 오늘은 그만 먹자-라는 말에도 굴하지 않고, 몸을 베베 꼬며 "제발요~ 하나만 더 먹게 해 주세요~"라며 쉬지 않고 떼교(떼+애교)를 부리는 저 판단능력과 절제력이 덜 완성된 의준씨에게 나는, 나는 왜 혼을 내는가-



나는 아마 어리석은 어른이인가보다.



오늘도 이 부족한 애비는 깊이 반성합니다. 당신에게 하나 더 배웠습니다 어린 의준씨. 세 명이 모이면 그중에 스승이 있다는데, 우리 집엔 스승이 많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배우고 어른스러운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입 벌리고 자는 의준씨 꼬옥 안아주고 빨래나 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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