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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n 12. 2018

그 부부가 여행하는 법

페루, 쿠스코


 여행을 하다 보면 무엇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자신의 정서와 잘 맞는 장소를 만날 때가 있다. 분명 처음 와본 곳이 분명한데 아주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온 듯한 뭉클함이 느껴지는 곳. 저 모퉁이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왠지 알 것만 같은 곳. 수년을 머문다 하여도 한결같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곳. 나에게 쿠스코는 그런 곳이었다.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잉카 문명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웅장한 성당과 광장으로 덕분에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이름 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신비로운 유적지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거점으로 남미 여행자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발 고도 3,300 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기에 고산 적응이 되지 않는 상태로 쿠스코에 도착하면 고산병 증상이 올 수도 있어서 해안가에 있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쿠스코로 올라온 여행자들은 두통과 함께 쿠스코를 만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해발 2,300 미터에 위치한 페루 남부의 도시 아레키파에서 며칠을 지내다 왔기에 심한 고산 증세 없이 선명하게 쿠스코의 첫인상을 맞이할 수 있었다.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


 쿠스코의 도심은 수백 년 된 역사 속에 현대인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만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잉카시대 석조물 사이로 남미 특유의 식민지 풍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선 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검은 매연을 내뿜는 택시와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이 없다면 어느 시대의 모습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보였다. 남미의 여느 콜로니얼 도시와 같이 쿠스코에도 도시 한가운데에는 아르마스 광장이 자리 잡고 있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성당, 관공서, 상점 등이 있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으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웅장한 성당을 바라보며 서있는 잉카 제국의 왕 파차쿠텍의 동상이 가슴 아픈 침탈의 역사를 외치는 듯했지만, 밝게 웃는 사람들과 활기찬 분위기의 광장 풍경은 식민지 시대를 지나 세계인의 발길을 사로잡는 명소로서의 쿠스코를 느끼게 해 주었다.


사진만 봐도 다시 숨이 가파온다.


 앞서 말한 대로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여행사 등 대부분의 편의 시설은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 모여 있지만, 우리가 미리 점찍어둔 숙소는 아르마스 광장에서부터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조금만 빨리 걷어도 숨이 가빠오는 고산도시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계단길을 올라가려니 마치 히말라야 등반대가 된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한 걸음 한걸음에 온 체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물론 우리 부부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현지 사람들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우리를 지나치며 사뿐하게 언덕길을 내달리고 있었으니, 고지대에 사는 그들의 폐활량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힘들게 올라간 만큼 숙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쿠스코의 전경은 숨이 가쁜 가슴이 뻥뚤릴 정도로 시원했고, 네발로 기다시피 도착한 우리에게 코카차를 내밀며 환대해준 호스티스 나탈리는 오랜만에 만난 먼 친척처럼 우릴 반가워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쿠스코를 한동안 그리워하게 만들어 준 그 특별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나탈리의 테라스에서는 쿠스코가 한 눈에 보였다.


 경영학을 전공 중인 대학생 나탈리가 운영하는 호스텔은 지금껏 우리가 갔었던 여느 숙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탈리 가족이 살고 있는 3층 집은 쿠스코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 1층을 나탈리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호스텔처럼 리셉션이 있는 로비와 공동 주방, 게스트룸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가정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현관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매끈한 나무 바닥을 맨발로 느끼며 들어서면 기억자 모양의 소파가 놓인 거실에 모여 앉아 놀고 있는 게스트들과 나탈리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거실 뒤쪽으로 커다란 식탁을 지나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주방이 있고, 집을 가로지르는 짧은 복도를 두고 좌우로 게스트 룸이 있다. 기껏해야 10명 남짓 정도만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호스텔이었기에 게스트들은 방에 머물기보다는 늘 거실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치 친구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의 호스텔에서는 국적과 나이를 넘어 금세 모두 친구가 되었다.


친구의 집에 놀러온 느낌이었던 호스텔


 그동안은 호스텔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친해지더라도 그냥 대화 상대로 그쳤을 뿐 함께 돌아다니거나 식사를 같이 했던 적은 드물었다. 항상 둘이 붙어 있었기에 다른 동행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여행 스타일의 차이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에는 내내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항상 거실에서 웃고 떠들다가 함께 거리로 나가 나탈리의 설명을 들으며 거리를 걷다가 가이드북에는 나오지도 않는 재래시장이나 로컬 식당을 찾아다니고는 했다. 특히 저녁 식사 시간은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자신의 나라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그때마다 부부 장기 여행자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살림살이를 하면서 다듬어진 요리 솜씨에 장기 여행으로 쌓인 임기응변 노하우가 더해져 부족한 식재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보인 야매 한식에 다들 극찬을 해주었다. 심지어 호스텔 주인 나탈리가 몸이 아플 때에 야채죽을 끓여주기도 했고, 한동안 한식을 못 먹었다는 한국인 여행자를 위해 불고기 백반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부족한 재료로 얼렁뚱땅 만든 파전이었지만 국적을 불문하고 열광했다. 한식의 세계화는 김치보다는 파전이 나을지도...


 그렇게 우리 부부가 주방에서 꽁냥꽁냥 거리며 요리를 하고 있을 때면 다른 여행자들이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왔다. 아마도 부부가 장기 여행을 하고 있기에 같은 여행자로서 느끼는 현실적인 문제가 궁금했나 보다.


 크리스 (브라질, 남) : 여자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은 며칠만 해도 정말 힘들던데. 너네는 참 대단하다.

   나 : 맞아.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 우리도 많이 티격태격하며 여기까지 왔어.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일뿐 아니라 함께 사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고집을 부릴 때도 있고 양보를 할 때도 있고 그러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


 브리짓 (마카오, 여) : 두 사람이 취향이 다를 수도 있는데 여행 중에 선택은 어떻게 해?

   아내 : 서로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맞춰지지 않는 부분이 있지. 여행 중에도 그런 부분이 자꾸 튀어나오고는 해. 체류할 도시, 이동 수단, 숙박 같이 함께 맞춰야 하는 부분은 충분히 상의도 하고 서로를 설득해서 합의를 하고 있고, 시내 투어나 식사 등은 각자 취향을 존중하고 있어.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낯선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체력적인 문제로 사소한 일로도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 쉽다. 게다가 여행 중에도 먹고 보고 즐기는 이면에 소소한 집안일(?)이 존재한다. 매일매일 어김없이 빨랫감이 나오고, 숙소에서도 정리 정돈 수준의 간단한 청소가 필요하다. 또 여건이 가능하면 식사는 장을 봐서 직접 해 먹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장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일도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한국에서 그랬듯이 빨래는 아내가 청소와 짐 정리는 내가 담당했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설거지를 면제해주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내가 여행 경비를 관리할 때면 아내가 가계부를 정리했고, 내가 이동경로를 조사하고 있으면 아내는 숙소를 찾아 예약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이렇게 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늘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눠졌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소소한 일들로 인한 사소한 불만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에는 사소하지 않은 충돌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만, 여행 이전에 이미 수년을 함께 살던 부부였기에 생활의 습관이 여행 중에도 고스란히 이어져서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게 부부 여행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밤이 더 아름다운 쿠스코의 거리


 생활의 습관이 여행 중으로 이어지는 것은 비단 역할 분담뿐이 아니었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 한국에서 살던 때의 소비 습관이 여행에도 이어졌다. 사실 우리 부부는 소비를 능숙하게 해내는 타입이 아니다. 무엇인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오랫동안 주저하다가 마침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야'라며 돌아서는 일들이 많았고 뭔가 소비를 할 때면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가진 재산을 다 털어서 긴 여행을 떠나오면서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아낌없이 투자하자고 다짐을 하고 떠나왔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이 순간은 한 번 뿐이라는 생각으로 씀씀이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고자 했지만, 매번 가성비와 최저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내는 여행 중에도 1+1 상품을 포기하지 못해 대용량 샴푸를 두 개씩 들고 다녀야 했고, 나 역시 뜯어진 운동화를 꿰매 신고 다니는 궁상을 떨었다. 배낭이 무거워진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아무리 가지고 싶은 기념품이 있더라도 눈으로 사서 마음속에 보관했다.


뜯어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멀쩡해서 꿰매 신었을 뿐이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대화 중에 우연히 세계일주를 다녀왔다는 말을 하게 되면 으레 엄청나게 부자거나 엄청나게 철이 없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간이 길다 보니 사실상 적은 돈을 쓴 것은 아니지만 신혼여행이나 직장인이 휴가차 떠나는 해외여행을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저렴한 여행을 이어갔었다. 택시를 타기보다는 시내버스를 이용했고 항상 그 도시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와 식당을 찾기 바빴던 덕분에 두 사람이 합쳐서 하루 평균 몇 만 원의 비용으로 숙식과 교통비는 물론이고 입장료와 생활에 필요한 물건 구입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렴한 숙소에 머물고 불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경험에 투자하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 중에 만나는 웬만한 유적지는 놓치지 않았고 때로는 현지에서 가이드 투어도 참여했으며, 여행 중에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도 상급 레벨로 업그레이드했다. 비록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로컬 식당이기는 하지만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도 즐겼고, 안락한 고급 호텔에 머무는 대신에 조금은 불편하지만 현지인의 집에서 그들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반드시 싼 게 비지떡일 필요는 없었다.


고급 레스토랑보다 조금 허름한 로컬 식당이 정감있고 편안했다.


 그렇게 가능하면 경제적인 여행을 하던 우리는 쿠스코에 머물던 중에 마추픽추로 향하는 교통편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인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쿠스코에서 아구아스 깔리엔테스라는 마을까지 가야 하는데,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없어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문제는 3시간가량의 거리를 기차로 왕복하는 데 인당 무려 2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다. 근처 기차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기차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결국 도로가 이어지는 곳까지는 최대한 버스를 이용하고 남은 거리는 철로를 따라 걸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철로를 따라 걷기에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마추픽추까지 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좁은 미니버스를 타고 안개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달리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비포장 절벽 길을 8시간 정도 달려서 아구아스 깔리엔테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는 기찻길을 따라 3시간을 걸어야 했다. 이따금씩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리면 길 옆으로 피하기도 하고 도중에 폭우가 내려서 온몸이 흠뻑 졌었지만, 저 멀리 산 위에 있을 마추픽추를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다. 다음날 새벽, 그렇게 고대하던 마추픽추를 만났다. 해가 뜨면서 산마루에 가득 차 있던 안개가 조금씩 옅어지더니 신비로운 공중도시가 눈 앞에 드러났다. 눈물이 날 것만큼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힘들게 오긴 했지만 눈 앞의 펼쳐진 감동적인 풍경은 과정의 고통을 한 순간에 잊게 해주었다. 잉카 트레일을 따라 수십 킬로를 걸어서 마추픽추를 찾아온 어느 여행자가 기차를 타고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어쩌면 조금 불편했던 여정이었기에 더 감동이 더 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달콤한 결실을 맛보는 순간에 거기에 이르기 위한 수많은 고생의 순간이 떠올랐기에 더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 사진을 볼 때면 쿠스코에서부터 마추픽추까지의 모든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누구나 여행을 하는 데에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가치관들이 묻어 나온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우리 부부가 여행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혹자는 궁상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장기여행이면 으레 그런 것이지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했던 지난 여행의 여정들을 떠올리며 우리 부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부족하고 불편해도 상관없다. 기차를 타지 않아도 멋진 마추픽추는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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