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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n 05. 2018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 사실상 섬나라와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국경을 건넜다. 가장 흔한 방법인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일 외에도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선상에서 입국 도장을 받기도 했고, 유럽에서는 차를 타고 달리다가 언제 지나쳤는지 알지도 못한 채 국경을 넘게 되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차를 타고 국경 마을까지 이동해서 직접 국경선을 눈으로 확인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를 걸어가는 경우야 말로 진짜 국가의 경계를 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를 이동하는 경로에서 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과테말라 입국은 멕시코 최남단의 작은 국경 도시인 시우다드 이달고에서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경계를 나누는 수치아테 강을 다리로 건너면서 이루어졌다. 여행자들이 많이 택하는 경로가 아니었기에 정보도 부족한 데다가 스페인어를 못하는 우리 부부는 손짓 발짓으로 묻고 물어서 간신히 출입국 사무소을 찾아갈 수 있었고,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들쳐 메고 이글거리는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서 국경을 넘어갔다. 국경을 넘고 나서도 인력거, 옆문이 떨어져 나간 위험천만한 승합차, 과테말라의 그 유명한 치킨 버스 등을 하루 종일 갈아타고서야 목적지인 케트살테낭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테말라 여행을 마치고 안티구아에서 다시 멕시코 남부로 다시 넘어가는 길은 다행히 여행자들이 많이 이동하는 구간이라서 국경을 넘어가는 경로만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여행자 셔틀을 이용할 수 있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나누는 수치아테 강을 건너는 다리 위의 국경선


 다리도 제대로 뻗기 힘든 비좁은 여행자 셔틀에는 각국의 다양한 여행자들이 모여있었다. 유일한 동양인이자 부부 여행자였던 우리는 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기에 쉽게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갭이어를 맞아 친구와 함께 중미를 종주 중이라는 덴마크에서 온 십 대 여고생, 과테말라가 너무 좋았다면서 마야 유적지에 대해 침을 튀기며 극찬하던 스페인 아저씨, 그 밖에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좁고 답답한 승합차 안에서 10시간을 넘게 함께 고생했던 여러 여행자들이 떠오르지만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사람은 영국에서 왔다는 엠마였다. 엠마는 100m 밖에서도 한눈에 히피 임을 알 수 있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드레드 머리는 기본이고 알록달록하고 펑퍼짐한 상의, 꼬질꼬질한 바지와 대충 둘러맨 천가방까지 인도나 동남아시아 여행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히피 여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엠마는 멕시코에 2년째 머물면서 과테말라를 오가며 목걸이, 팔찌와 같은 장신구를 만들어 팔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녀는 너져분한 옷차림과는 달리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시장통 같았던 국경에서 어쩔 줄 모르는 우리 일행을 거침없이 통솔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엠마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 때문인지 쉽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다양한 엠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과테말라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라 메시야 국경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북적이는 시장


 과테말라에서 넘어가 도착한 곳은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에 있는 작은 도시인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 이하 산크리스토발)였다. 해발 2,200미터의 고원에 위치해서 인지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같은 건조하고 선선한 공기 덕분에 종일 쾌적했고 낮에는 내리쬐는 햇볕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산크리스토발은 이미 날씨에서부터 합격이었다. 아기자기한 콜로니얼풍의 도시는 토속신앙과 섞인 독특한 분위기의 성당과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장난감 같이 귀여운 집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었고, 마침 크리스마스 기간에 머물게 되면서 도시 곳곳에서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도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과달루페 거리에는 여행자들을 사로잡는 노천카페, 공예품 가게, 레스토랑, 여행사들이 모여있어서 항상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명한 치아파스 커피의 산지답게 거리마다 커피를 볶는 향긋한 내음을 느낄 수 있었고, 도심의 북쪽 편에는 꽤나 큰 재래시장이 있어서 현지의 생활에 빠져볼 수 있는 기회도 충분했다. 게다가 근교에는 토속 신앙과 가톨릭이 만난 독특한 종교색을 볼 수 있는 차물라 마을과 거대한 절벽 사이로 배를 타고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며 감상할 수 있는 수미데로 협곡이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이쯤이면 가히 완벽한 여행지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인데 날씨는 여름이구나


 산크리스토발은 우리 부부에게 존재만으로도 완벽한 여행지였기에 특별히 뭔가를 더 보고 경험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머무는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느지막이 일어나서 커피를 내려마시고 설렁설렁 동네를 산책하다가 광장 귀퉁이 앉아 타코를 먹으며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산크리스토발은 누구라도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고 여유로운 한량이 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도시 곳곳에서 엠마와 같은 히피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거리와 광장에 자리 잡고 직접 만든 장신구를 팔거나 저글링이나 포이와 같은 묘기를 부리기도 하고 작은 공연을 하면서 여행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아직도 히피족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물가가 저렴하고 자연환경이 좋은 여행지에는 어김없이 히피 스타일의 장기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에 주로 많지만 중남미에서도 종종 히피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허름한 옷차림과 지저분한 몰골로 인해 간혹 부랑자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지만, 알고 보면 자유분방한 평화주의자들이 대부분이며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금세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여행 자체가 생활인 그들은 공예, 기예 등의 자신만의 특기로 끊임없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기에 한량처럼 보이는 그들도 나름의 일상적인 생업을 수행하고 있다.


광장에서는 항상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과달루페 거리 한가운데에서 만난 조나단과 케이시 부부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어 팔면서 여행을 하는 히피 여행자 부부였다. 거리를 지나치며 하루에도 몇 번을 보면서도 혹시나 강매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쉽게 관심을 보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는 동안 그들을 볼 때마다 팔리지도 않는 엽서를 앞에 두고도 느긋하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보내고 이따금 서로 대화를 하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다가 슬쩍 말을 걸어봤다.


"이 엽서들 모두 네가 직접 찍은 사진이니?"

  "응, 우리가 2년 넘는 기간 동안 중남미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야."


"많이 팔리니?"

  "그럴 리가.^^ 그래도 간혹 사가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너네 둘은 정말 행복해 보여."

  "맞아. 우린 항상 행복해."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길에 앉아 있으면서도 돈을 못 벌어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들은 돈벌이랑 상관없이 그냥 행복한 것이었다. 예상컨대 둘은 아주 저렴한 호스텔의 도미토리에 묵으면서 간단한 식재료로 만든 파스타로 끼니를 때우고 변변치 않은 소지품을 들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중일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였지만 적어도 오늘 저녁 숙박비,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비를 고민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의 자세한 경제적인 상황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매일 엽서를 팔러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여유롭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 부부보다 더 여유로운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표정은 소유의 만족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존재의 행복감에서 나오는 듯했고 적게 가지고도 더 행복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밤이 더 아름다웠던 과달루페 거리


 혹자의 눈에는 히피 여행자들이 인생을 낭비하는 한심한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에 나선다고 했을 때도 '지금 네가 그럴 때가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야 할 때다.'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소유 중심의 삶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면 가진 것 없이 현재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을 테고, 지금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기에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삶의 방향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전의 우리 부부는 소유의 삶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었지만,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다.


 아내와 함께 긴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에 필요한 배낭 안의 짐을 제외하고는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것을 정리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리 많지 않은 우리의 것들에게 새로운 자리를 찾아주기까지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혹시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돌아오게 될 것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일부를 남겨두고 떠났다. 아마 소유에 대한 미련을 끝내 끊어내지 못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배낭 하나의 물건 만을 가지고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조금 불편할지언정 불행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건을 소유함에 따른 편리함과 만족감보다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얻은 행복감이 더 컸었다.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루종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던 광장


 산크리스토발에 머무는 동안 해도 들지 않는 좁은 방에 머물고 재래시장에서 사 온 채소로 간단한 요리를 해 먹으면서 지냈지만 한국에서 편안한 집에서 생활하며 주말마다 맛집을 찾아다니던 때보다 마음이 더 꽉 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것을 가지고 멋진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부족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더 행복감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앞으로는 더 가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산크리스토발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배워서 떠날 수 있었다.


"우리도 히피 여행자들처럼 살 수 있을까?"

    "못할 건 없지. 한 번쯤 그렇게 살아보고 싶을 때도 있었어."

"그래, 많이 가지지 않아도 자유로울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겠지?"

    "함께 있는데 뭔들 어떻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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