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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l 10. 2018

다시 설레다.

세상의 끝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


 세상의 끝에 서보고 싶었다. 그곳에 서면 무엇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처음 만난 세상의 끝은 남미 대륙의 최남단 도시인 우수아이아였다. 말장난 같지만 우수아이아라는 도시 이름 때문인지 첫인상이 우수에 젖은 듯한 쓸쓸한 모습의 도시였다. 싸늘한 바닷바람에 씻겨 물이 빠진 듯한 색감의 도시 풍경이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잘 정리된 해변 공원과 'Fin del Mundo(세상의 끝)'이라고 쓰여있는 입간판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투어 상품 안내 홍보물을 보면서 내가 기대했던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우수아이아는 최남단에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것일 뿐 지리적으로 남미 대륙의 가장 끝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나에게 더 이상 우수아이아는 세상의 끝이 아닌 곳이 되어버렸다. 남미의 진짜 가장 끝이라는 케이프 혼까지 가보았지만 그곳도 역시 배 위에서 보이는 작은 섬에 불과한 곳이었다. 첫 번째 세상의 끝에서는 실망감만 가득 느꼈다.


'우수아이아, 세상의 끝' 이라고 잘 포장된 도시


배에서 바라본 케이프 혼. 직접 올라갔더라면 세상의 끝을 느낄 수 있었을까?


 두 번째 만난 세상의 끝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희망봉이었다. 유럽인들이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면서 만났다는 아프리카 대륙의 모서리는 지리적인 특징과 역사적인 스토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희망봉이 있는 케이프 반도는 거대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해안절경을 따라 산책로와 도로가 굉장히 잘 정비되어 있었다. 희망봉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Cape of Good Hope'라는 표지판 앞은 종일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있었으며, 반도의 가장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등대는 접근이 제한되어 있어서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희망봉 역시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의 최남단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는 남미의 우수아이아와 비슷한 실망감을 느꼈다. 희망봉의 멋진 경치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세상의 끝에 서보고 싶다는 마음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인도를 찾아 험난한 바다를 탐험하던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 준 봉우리


희망봉의 가장 끝에 있는 오래된 등대. 가보고 싶었지만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진짜 아프리카 최남단을 가기 위해 희망봉에서 150km 떨어져 있는 케이프 아굴라스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에 도착한 케이프 아굴라스 부근 마을은 잔뜩 흐린 하늘에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2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단층짜리 집들이 자리 잡은 작은 마을에는 오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고, 어렵게 찾아간 캠핑장에는 손님은커녕 직원조차 보이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맞다! 내가 기대했던 세상의 끝에 가까워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으스스한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기가 겁이 나서 한참을 헤맨 끝에 찾은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케이프 아굴라스로 갔다.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등대에 차를 세우고 아무도 없는 해변길을 따라 아내와 함께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햇빛은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가을 끝무렵의 남아프리카의 바람은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손을 잡고 아무 말도 없이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멀리 작은 비석이 보였다. 화려한 미사여구의 표지판도 없었고 사진 찍기 위해 아우성인 관광객도 없었다. 해변 바위 사이에 서있는 작은 비석 뒤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뿐이었다. 비로소 진정한 세상의 끝을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


인도양과 대서양을 가르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케이프 아굴라스


 케이프 아굴라스의 경위도가 찍혀있는 비석에는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세상의 끝, 남쪽으로 향해 뻗어가던 대륙이 멈춰 서고 한없이 펼쳐진 두 대양이 마주친 점 위에 긴 여행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우리 부부가 함께 섰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서서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곳에 서기 위해 그 먼나먼 길을 돌아서 온 것은 아니었을까? 문득 이제는 여행을 마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여정을 되짚어보니 마치 한 편의 긴 영화 같은 감정의 흐름이 떠올랐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두려움과 설렘, 여행 초반에 낯선 환경에 힘들었던 순간들, 떠도는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평온해져 가는 마음 그리고 여러 가지 사건을 함께 겪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더 단단해진 아내와의 관계. 세상의 끝에서 바다를 보던 중에 아내도 나와 같은 순간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함께 귀국을 결심하고 세상의 끝에서 뒤를 돌아서자 그곳은 다시 세상의 시작이 되었다. 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세상의 끝에서 뒤를 돌아서자 그곳은 세상의 시작이 되었다.


 여행을 시작할 때에 대강 잡았던 계획으로는 남아프리카 여행을 마치면 동남아시아로 넘어가서 3개월가량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처음 계획보다 여행이 몇 개월 짧아지긴 했어도 1년이 훌쩍 넘는 기간을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반가울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매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면 현지 상황을 조사하며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환전 계획과 예산을 점검했는데, 이 마지막 여정에서는 전혀 그럴 필요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짐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 환승한 인천행 비행기에서 이따금씩 반가운 한국어가 들리고 기내 좌석의 화면에 보이는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가 점점 짧아져 갈수록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마침내 인천 공항에 마지막 착륙을 하면서 426일간의 긴 여행은 끝을 맺었다.


'Welcome to Korea' 가 어찌나 반갑던지


 오랜만이라 낯설어져 버린 우리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낯선 것들이 익숙하던 생활에서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져 버린 생활로의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마트에서는 갑자기 천, 만으로 바뀌어버린 화폐 단위가 어색했고, 으레 양보해 줄 거라 생각하고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일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무엇보다도 길거리에 모든 글자들이 한눈에 읽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모두 해석이 된다는 현실에 갑자기 눈이 뜨이고 귀가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못 읽고 못 알아들었던 여행 시기에 비해 거리를 걷는 일에 피로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금세 내가 살던 그 환경에 익숙해졌고, 여행 중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토록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에 새로운 여행지에 머무는 듯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여행의 여운을 느끼며 게으름의 여유를 즐길 시간은 그리 길게 허락되지 않았다. 수입이 전혀 없는 백수 부부에게 꼬박꼬박 날아오는 각종 고지서와 하루하루 0원을 향해 줄어만 가는 통장 잔고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 내가 속해있음을 잊지 않도록 수시로 일깨워주었다.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여행을 하던 중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은 항상 무거운 돌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면서 미래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다가 마침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그 돌을 떠안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여행 전에 충실하게 직장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 보니 실상 밥벌이로 할 수 있는 기술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식주 중에 그 무엇 하나도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 위한 자본조차도 충분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서 수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꿈꾸어 온 삶의 모습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현실의 벽을 넘기에는 헤쳐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결국 다시 임금노동자의 생활로 돌아가기로 했고,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활용가치를 인정해 준 회사 덕분에 긴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리 부부는 안정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다시 알람 시계가 설정되었다. 규칙적인 생활의 시작


 새로운 주거지, 새로 하게 된 업무, 새로 만나는 사람들. 또다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은 이제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하면서 항상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했고 그때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걱정과 불안을 다스리는 연습이 반복되면서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졌나 보다. 그리고 아내와 새로운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 함께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여행을 통해 우리가 조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예전보다 막연한 불안감이 줄어들었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늘면서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짐을 느꼈다. 그 평온한 마음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여행을 통해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과 정보가 많아서 그때마다 그것을 처리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순간의 작은 깨달음들을 여행을 마치고 사색의 여유가 생기면서 하나하나 곱씹으며 이제야 그 의미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아! 그런 일들이 나에게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구나.' 그중의 하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곁에 있는 동행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사실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도 항상 내 옆에는 함께 고민하는 아내가 있었고, 몸이 지치고 마음이 불편할 때에 아내의 옆자리에는 내가 있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온함을 지킬 수 있었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가끔은 원망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단순히 편의를 위한 동행이나 지루함을 극복할 말동무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챙기고 배려했고 어떤 순간에도 든든한 나의 보호자로서 믿고 의지했었다. 우리는 서로가 있었기에 긴 여행을 잘 헤쳐왔고 서로를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우리 부부는 다시 일상을 여행하고 있다. 우리들 앞에는 함께 여행할 수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길이기에 그 여행이 다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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