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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Mar 23. 2023

수상한 면접

내정자와 들러리


 2022년 가을, 두 번째 직장에서 퇴사했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고 강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내가 일을 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었고 당장 그만두는 것 밖에는 선택이 없었다. 온몸은 무기력증으로 저릿저릿한 느낌이었고 다음 날 밝아오는 아침이 기대되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멈춤의 시간 동안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몸을 움직였고 이 업계에 일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나를 돌보았다. 켜켜이 묵혀있던 나의 감정과 지지난 나를 괴롭게 했던 이야기는 글을 쓰면서 조금씩 해소되는 듯했다. 글 쓰는 동안만큼은 난 누구보다 내편이었고 한없이 연약했던 내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지는 듯했다. 


과거의 기억은 모두 좌절이라 여겼건만, 글을 쓰다 보니 뜨문뜨문 내가 만났던 아동 청소년 대상자들이 떠올랐다. 느리지만 조금씩 보이는 긍정적인 변화들.. 그리고 투명하고 이쁜 마음들까지.. 내 마음의 불순물이 걷어지자 보석같이 빛나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렇게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이 일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사회복지 일을 시작하기로 용기 냈다. 








 구인 사이트에 접속해 심사숙고해 몇 곳에 지원서를 냈다. 얼마뒤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문자로 당일 면접이라고 연락 온 것도 수상했고 무례하다고도 생각했지만 내정자 면접이라는 말에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나는 이 업계에 특출 난 인맥도 없고 더욱이 채용비리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면접을 보고 나면 분명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다음날 면접을 봤다.


그러니까 나는 공개채용에 앞서 내정자를 뽑는 면접을 본 것이다. 면접을 통해 '내 사람' '입맛에 맞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면 나는 진짜 내정자가 될 터이다. 그다음은 공개채용이라는 연극에서 꼭두각시행세를 할 것이라는 것도 충분이 예상가능했다. 모든 의구심이 이러한 결론으로 확실해진 건 면접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면접자는 나를 포함해 둘이었고 면접관은 한 명이었다. 우리가 한통속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면접이라기보다 잡담을 나누는 분위기였다. 나는 겉으로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 앞뒤 말을 쏙 빼고 속닥거리는 대화가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 답답했다. 내 옆의 다른 면접자는 경력이 많았기에 핵심 단어만 들어도 눈치로 면접관이 어떤 걸 요구하는지 캐치했다. 내가 얼핏 듣기론 돈이야기가 오고 갔고 법인 대표는 그 시절 많이 벌었다. 어쨌다. 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면접자리에서 면접자와 면접관이 내통하는 대화를 지켜보는 게 불편했다. 나는 어떤 불공정한 관행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곧이어 나는 대화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대표는 나에게 '아직 경력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를 것이다.'라고만 답했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못 들었죠?"라며 못 듣길 바라는 뉘앙스의 압력을 주었다. 뭐 이런 면접이 다 있나 싶었다. 그리고 내 직업적 가치를 담은 자기소개서엔 무슨 할 말이 이렇게 많냐며 너무 길다고 했다. 이어 이 정도는 공개채용 전 본인들이 수정하면 될 문제라고 했다. 거기에 내 의사는 없었다.








 수상한 면접이 끝나고 같이 면접을 보았던 다른 면접자에게 어떻게 이런 면접이 있는지 나는 처음이라고 기함을 표했다. 그녀는 "선생님은 처음 겪는 일이라 이해도 안 되고 당황스러우셨을 거예요. 저는 이미 알고 있고 어느 정도 예상했거든요."라고 말했다. 


내가 짐작했던 불공정한 관행은 이런 것이었다. 법인에서 입맛에 맞는 내정자를 골라 기관장 자리를 내어줄 때, 위탁준비비라는 명목으로 제본비와 교육비 등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관례였다. (그 법인에 대해 더 자세히 파해쳐보니, 교육비는 이미 합법화될 수 있도록 민간 자격증으로 급히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관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문이 막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선생님, 어디든 대부분 다 이래요."라고 말했다. 마치 본점에서 프랜차이즈를 줄 때 일정 금액을 받는 것과 같은 개념처럼 들렸다. 법인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복지 철학은 없고 위탁을 통한 사업 확장으로 법인의 배를 불리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이 법인이 지자체로 허가받은 위탁 기관만 해도 수십 개인데 지자체, 관계부처 공무원들은 정말 몰랐을까? 어쩌면 일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 일로 사회복지 업계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검은 지하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이어 나보다 경험이 많은 그녀는 자신이 겪은 불공정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공개채용이라고 믿었던 면접에서 자신은 '들러리'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사실과 또 다른 공개채용에 내정자 없이 합격했을 땐 무언가 문제가 있는 조직이었다는 것을. 문제가 많은 조직 안에서 뒤처리할 업무를 떠않게 된 일화까지. 그녀도 나처럼 이 업계의 악습, 불당함, 불공정에 대해 익히 알면서도 용기 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바뀌지 않은 악습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편에 분노가 치솟았다. 새로운 부조리를 알게 된 것에 불과한데도 내가 느낀 불쾌감과 분노가 잘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와 악습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커다란 구조 안에서 개인이 옳다고 믿는 선택은 뾰족해 보이지 않지만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선택해 자꾸만 튕겨져 나올 것 같다. 








아래의 링크는 국가권익위에서 발표한 사회복지시설 위탁운영 관련 특혜 및 불공정 사례와 제도 개선에 대한 내용입니다.


https://blog.naver.com/loveacrc/22243227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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