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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Jan 25. 2023

좋은 일 하시네요.

보이지 않는 칼날


“좋은 일 하시네요.” 



2016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택시를 타고 사회복지 실습처인 아동양육시설에 가는 길이었다. 기사님은 내가 불러준 목적지를 찍고 내 얼굴을 한번 쓱 보더니 “여기서 일하세요? 좋은 일 하시네요.” 라며 말을 건넸다. “아니요. 저는 실습생이에요.”라고 답했고 기사님은 낯선 나에게 도착지까지 친절히 대해주셨다. 애초에 '좋은 일' '나쁜 일'이 어디 있겠냐 마는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의 첫마디는 늘 '좋은 일'이었다. 사회복지사 직업에 대한 인상이 좋은 탓인지 나는 나름의 혜택을 누렸다. 예를 들어 낯선 사람에게 쉽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좋은 일이라며 쉽게 타인의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그 말이 불편해질 줄은 몰랐다.


      






 실습을 마친 후 취업을 준비할 무렵, 나는 아동·청소년 대상자를 만나는 곳에서 그들의 성장과정에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게 지역아동센터는 나의 첫 근무지가 되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아동·청소년이 돌봄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교류하는 제2의 가정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아동·청소년 대상자와 함께한 모든 순간은 역동적으로 흘러갔다.     



어느 날 근무 중 전화가 울렸다. 나는 평소처럼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의 여성분은 떨리고 흥분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 첫마디에 예상되는 상황이 떠오르지 않아 순간 얼음이 되었다. 그분은 우리와 교류가 많던 보호자셨다. 바쁜 생계활동으로 아이를 잘 못 챙긴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많이 의지하시던 보호자이다. 종종 두 손 가득 간식을 챙겨 와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고마움을 표현하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 전화를 했으니 무언가 단단히 큰일이 일어난 것은 분명했다. 



“어떻게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요. 차마 내 입으로 말도 못 하겠어요.”라고 운을 떼었다. 그리고 나는 연신 “죄송해요. 저희가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 아이에게도 사과할게요.”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 건내들은 이야기의 정황은 이랬다. 한창 사춘기인 대상자가 동료 사회복지사에게 반항심을 보였고, 이에 동료는 대상자에게 “눈깔을 뽑아 버린다.”라고 말한 것이다.



청소년 대상자를 만나는 일은 사춘기 특유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매일 바라보는 일과 같았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과 마주하다 보면 참다 참다 답답함을 못 이겨 내지르기도 했다. 그 후엔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우리도 사람인지라 속상하다 못해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그 상황에선 우리의 잘못이 분명했다.



보호자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으셨고 약 1시간 동안 속상한 감정을 표현했다. 내 옆에 있던 동료 사회복지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리만 붙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긴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때, 동료 사회복지사는 대상자에게 바로 사과를 했다. 



우리는 의사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칼을 가지고 있다. 그 칼날은 우리의 언어 또는 민감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복지사에게 꼭 필요한 칼이다. 그 칼날이 너무 날 서 타인과 나를 해쳐서도 안되고, 반대로 너무 무뎌서 둔감해져서도 안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며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칼이기에 더욱 사용하기 어렵다.


     






 나 역시 좋은 사회복지사라고 말할 수 없다. 폭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별도 존재한다. 대상자에게 공평하게 대한다고 해도 말 한마디라도 예쁘게 말하는 대상자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매번 문제를 일으킨다 싶은 대상자에게는 나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본다. 훈육을 넘어서 어느새 강요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열정만 넘치고 서툴렀던 신입 사회복지사 땐 “선생님 분노 조절 장애예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타인이 느끼기에 폭력이라면 폭력이 맞겠다. 특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언어가 그들의 마음에 선명히 기억되고 있다면 말이다. 그때마다 최대한 빨리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전했고 마주 보고 사과를 전했다.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아. 선생님이 잘못했어.”라고. 



반대로 우리에게도 폭력적인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싸우는 대상자를 말리는 과정에서 난무하는 욕설을 들었을 때와 직접적인 욕설을 들었을 때다. 내가 훈육하는 과정에서 한 대상자는 나에게 '시발' '개 짖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 말을 대상자로부터 들었을 땐 수치스러워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언제든 대상자로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사회복지사라는 이유로 약자의 권리를 우선시해야 했다. 지금껏 사회복지사의 권리가 먼저 옹호된 사례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대체로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걸 품어줄 수 없었다.    


그저 제삼자의 눈으로 바로 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문득 사례관리 업무를 하면서 만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혹시 필요한 지원 있나요?"라는 내 질문에, "저는 아직 도움 안 받아도 돼요. 그리고 저는 사람을 안 믿어요. 특히, 저는 자라면서 사회복지사분들 많이 만났잖아요. 근데 그분들, 좋으신 분들이지만 잘 못 믿겠어요. 어쨌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청년은 계속 '사람을 안 믿는다.'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그 말속에 누구라도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그 청년을 만나고 나서 왠지 모르게 허무함과 먹먹함이 밀려왔다.







 

 점점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그 말에 왠지 모를 부담이 자라난다. 내가 내뱉은 말로 인해 상처받았을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하거니와 대상자의 무방비한 폭력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순간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이전에 나약한 사람에 불과한데도 나는 괜찮은 척, 센 척을 참 많이도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위한 보호막 없이 소중한 칼날을 쥐며 그 무게를 다하는 그들에게 흔한 말로 그저 "고생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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