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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Mar 15. 2023

당신의 시소는 어느 방향인가요?

일과 삶의 균형


 내게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다. 



끝끝내 해결하지 못한 어떤 굴레처럼, 나는 일과 나를 동일시해 왔다. 그래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원인을 찾았고, 내가 만난 서비스 대상자의 관계와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치 나에게 닥친 일인 것처럼 감정적 동요를 크게 느꼈다.



내가 하는 일은 타인의 삶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기에, 대부분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일, 어쩌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 문제들을 머릿속에 저장해 집까지 들고 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쓸데없는 일이다. 그러한 불필요한 생각의 꼬리를 거두려고 노력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그 잔상과 여운이 남아있기에 내 의지만으로 쉽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복지사 직업의 특수성과 더불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애정, 책임감까지 더해져 어느새 일은 내 삶을 침범하고 있었다. 점점 나는 내 삶에 멀어지다 못해 희미해지는 듯했다.


 

특히, ¹사례관리 업무를 맡을 땐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대상자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찌르는 것만 같았고, 그들이 겪은 아픔은 때로 내가 상상치도 못한 일이기 때문에 간접적인 트라우마를 겪는 듯 무력해지길 반복했다. 그럴 땐 일에서 잠시 멀어져도 될 텐데, 그러질 못하고 묵묵히 혼자 삭히곤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료들은 내가 의연하게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 스스로에게 미안할 정도로 멍청한 짓이었다.








 사례회의 때 대상자 한 명 한 명의 케이스에 대해 논의할 때면, 우리의 개입보다 그들의 의지와 노력에 가까운 변화를 두고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칭찬을 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안 되는데, 동료의 그런 반응들이 마치 나의 결과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문제나 상황에 대해 반추하는. 그러니까 적당한 성찰은 업무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지나치다 못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의 화살을 나에게 돌려 추측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편이 나에게 늘 편한 방식이었는지, 어쩌다 이런 생각회로에 갇히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장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다.








 사회복지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감정전이, 딜레마, 가치 혼돈 등은 이 업계에 속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것으로부터 탈피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직업적 특성으로 치부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도망갈 수 없었다. 스스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나만의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숙제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둘러싸며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끝내 이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위험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러니 내 직업적 특성을 탓하고 푸념하기 이전에 내 숙제를 풀어야 했다. 어떻게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며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 말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속한 환경으로부터 일단 도망가는 방법뿐이었다. 퇴근 후에 좋아하는 취미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이직을 한다고 해서... 이런 방법은 큰 도움이 안 됐다. 



누군가의 방법은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티켓을 끊고 훌쩍 떠나는 방식이나 코미디 영화 한 편으로 쉽게 잊을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다. 나 역시 그럴 수만 있다면야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순간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방법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순간은 잠시 즐거울지 몰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장치일 뿐, 장기적으로 해결되지 못했다.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해결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퇴사 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타인의 삶에 참 많이 관여해 왔으면서 정작 내 삶의 주도권이 없었다. 내 삶의 주도권을 찾아 삶의 균형점을 찾는 일은 퇴사를 해야지만 시도할 수 있었다. 드디어 힘껏 삶 쪽으로 무게를 실어야 할 시점이었다.      





   



 퇴사 후, 깊게 빠져서 몰입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오일파스텔 강의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어릴 적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던 내 모습처럼 무해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블로그에 나의 일상을 기록하며 작은 일상의 일부분을 소중하게 들여다보았다. 흘러가는 계절, 흘러가는 감정과 낯선 감각들. 그동안 내가 귀하게 여기지 못한 것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운동을 배우며 처음으로 건강하다는 감각을 알게 되었고 땀을 흘리며 불필요한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속에서 책을 읽으며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좀 더 부드럽게 다가갔다. 



작지만 여러 시도 속에서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무엇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당장의 하루를 내 방식대로 보냈다는 만족감 하나로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내 마음을 써 내려가는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백지에 옮기는 과정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었다. 나아가 내가 속한 환경과 타인을 뾰족하게 바라보며 무엇이 나를 괴롭게 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막연한 괴로움 속에 파고들어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과거의 나를 용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글쓰기라는 나만의 탈출구가 생기자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얻었다. (음. 갑자기 글쓰기의 효과와 장점으로 이야기로 빠진 것 같다만... 그만큼 나는 글쓰기로 나의 삶에 힘껏 닿을 수 있었다.)








 혹시 누군가도 나처럼 삶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무언가에 압도당하거나 괴로워해 삶의 균형을 잃고 있다면, 어릴 적 시소 놀이를 할 때처럼 그냥 힘껏 내 방향으로 무게를 실어보기를 권한다. 무엇으로 무게가 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힘을 싣는 주체가 오로지 '나'이면 된다. 



쿵.



이렇게 무게를 실어야지만 그다음 단계인 균형점을 찾 수 있으니 말이다. 맞은 편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뜻하지 않게 내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언제나 인생은 예상 밖의 일이 펼쳐지니 말이다. 다만, 내가 그리고 당신이. 있는 힘껏 삶에 무게를 싣는 감각을 알고 있다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 균형을 맞추는 일은 전보다 조금은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삶의 균형점을 찾지 못해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다면.


     

다 됐고, '삶을 내 방향으로 끌어당길 때가 왔구나.' 하고 힘껏 무게를 실어보기로 하자.







¹사례관리 :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지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서비스와 자원 체계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이를 통하여 고객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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