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늘부터 6일동안 reserve이긴 하지만 왠지 오늘은 비행이 없을 것 같았는데, 내 예감은 틀렸다. 토요일 저녁 6:45.. 난 공항대기 (airport standby)를 하는 중. 4시간 내에 비행이 잡히면 비행 가는거고, 안 잡히면 집으로 release 되는거고 ☺️
보통 난 이 시간에 책을 읽거나, 가만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인스타그램을 하거나, 평소에는 안 찾아먹는 스타벅스를 사서 마신다거나 한다. 4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다.
입사한지 어느덧 7개월 남짓 (트레이닝까지 합쳐서). 이 "승무원"이란 직업을 곱씹어보며 고백하고자 한다. 분명 이 직업과 나의 관계는, 마냥 하트뿅뿅이 아닌, 애증관계임을..
난 "승무원"이란 내 직업을 사랑한다.
우선, 일을 하면서도 내가 즐길 수 있는 일, 그래서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큰 복인 것 같다.
비행갈 때마다 바뀌는 크루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의 스토리를 듣는 것에서 오는 쏠쏠한 재미. 또한 비행이 끝난 후의 여행, 혹은 호텔방에서의 혼자만의 휴식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은 내 직업에 달콤함을 더한다.
게다가 미국항공사의 손님들은 대개 친근하고 매너가 좋아서 아직까지 딱히 얼굴 붉힌 일 없이 웃으며 비행했다.
보통의 9-5 회사원들과 달리 매일 출근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이 직업에 매력을 더한다. 쉬는 날이 한달에 보통 12일정도 되는데, 그때는 실컷 낮잠을 자고 gym에 가서 밀린 운동을 한 후, 다운타운에 위치한 커피샵에 가서 신선놀음을 한다던지, 1박 2일로 친구를 만나러 다른 주로 간다던지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모든건 pass travel 혹은 non-rev라고 불리는 공짜 비행기 티켓이 있기에 가능한 일. 이 직업의 꽃은 바로 이 pass travel이다. 꽉 차지 않은 flight이라면 언제 어디든 타고 갈 수 있다는거.
부수적으로는 꽤 괜찮은 의료보험, 퇴직연금, 직원할인 등이 있겠다. 아! 이 직원할인이 굉장히 쏠쏠하다. 세계 각지의 호텔, 차 렌탈, entertainment에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해당 항공사와 제휴를 맺은 다른 회사들의 공산품이라던가 심지어 차에도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나도 트레이닝 졸업하자마자 차를 한 대 뽑았지.
이렇게 좋은 점이 다 나열할 수 없이 많지만, 그 이면에는 나 혼자 삼켜야하는 눈물도 있다.
대부분 직업 자체만을 보고 뛰어들지만, 이 라이프스타일은 정말이지, 참으로 고독하다.
비행을 가서 호텔방에 혼자 있다보면 본능적으로 "외로움"이란 지독한 깨달음을 얻는다. 크루들과 함께 왔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온 것이 아니기에 여행을 해도 가끔은 한 쪽 어디가 공허한 기분. 비행이 없는 날, 가족을 떠나 base인 휴스턴에 와 있는 나는, 늘 비행 스케쥴이 달라 집을 비운 룸메이트의 흔적만을 보며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집에 있고. 그러다보면 어느 날은 '내가 한 마디도 안하고 지나가는 날도 있겠구나..'싶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무언가로 채워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염려하시는 "시차적응" 문제.
맞아, 사실 첨 비행을 시작했을 때는 나도 이것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분명 몸은 지쳐 쓰러져있는데, 정신이 말짱하니, 이거 원. 자고싶은데 잘 수 없는게 고민인 적은 처음이었다.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은 그렇게 밤을 꼬박 지새우고 다음날 또 비행을 가서 jumpseat (승무원 전용석)에서 고생한 경험이 있다.. 현직 승무원 분들은 공감하실 듯.
하지만 이젠 어느정도 여유가 생겨서 "언제" 자느냐에 의미를 두지 않고, 내가 "총 몇 시간"을 잤느냐에 더 신경쓰기로 맘 먹었다. 낮이어도 졸리면 안대부터 쓰고 일단 잠에 든다. 다음날 비행이 없는 날이라면, 새벽에 잠이 안오면 그냥 안 자고 만다. 다음날 낮에 자면 되니까.
물도 많이 마시고, 비타민도 챙겨먹고, 그러면서 조금씩 극복 중.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이 라이프스타일. 이웃집 사람들은 휴일이다 뭐다 바베큐 파티할 때 나는 웃으며 "have fun!" 인사하고 출근해야하는 이 직업.
어떻게보면 그래서 더 빛나는 것 아닐까.
비행기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스토리를 갖고 어딘가로 이동한다. 공휴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위해 내 비행에 탄 손님. 친구가 하늘나라에 가서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라며 비행 내내 울던 손님. 혹은 출장 땜에 승무원과 맞먹도록 자주 비행기를 타는 손님. 모두 다 기억하고 있고, 그분들과 그분들의 스토리가 함께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때를 가리지않고 출근을 하는 이 직업. 난 꽤 매력적인 것 같은데.
내 직업을 사랑한다. 가끔은 밉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 이 직업을 통해 굉장히 많은걸 배우고 있다. 난 성장하고 있다. 세계를 보고, 그 세계 속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래서 또 내일도 사랑하겠지. 또 감사하겠지, 지금 내게 온 이 "승무원"이라는 직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