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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May 18. 2022

2화: 인류는 어떻게 기저귀를 써 왔을까요?

세계 여러 지역에서 기저귀를 사용하는 문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누이트는 물범 가죽 아래에 이끼를 깔아서 기저귀로 썼습니다. 미국 원주민과 잉카인들은 토끼 가죽으로 된 기저귀 커버에 잔디를 채워 썼습니다. 열대 기후 지역에서 아기는 주로 벗고 지냈고 용변을 보면 씻겼다고 합니다. 미국 서부에서는 젖은 기저귀를 거의 세탁하지 않고, 대부분 화롯가에서 말려 그대로 다시 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는 밑이 터져 있는 풍차바지(개구멍바지)를 입혔습니다. 중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짜개바지를 아이들에게 입혔습니다. 일본에서는 많이 입어 닳은 옷을 작게 잘라 기저귀 형태로 아이에게 채웠습니다. 유럽에서는 아기를 길다란 천으로 동여매 두었는데, 하체 부분은 감싸지 않고 깨끗한 천으로 자주 교체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씩이나 같은 천으로 묶어놓아 배설물이 묻은 상태로 방치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걸쳐 두루 살펴볼 때, 여러 지역에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배변을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의 용변을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에스키모가 사용한 물범가죽 기저귀(사진 출처: Rogers Archaeology Lab)
풍차바지 또는 개구멍바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네이버지식백과)
중국의 짜개바지(crouch-open pants) 사진출처: wikipedia.org

면 소재의 기저귀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20년대, 산업혁명 이후입니다. 이 때 노동 계층은 가구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기의 배설물로 가구가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면기저귀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880년대에는 안전핀이 발명되어 기저귀를 더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87년, 마리아 알렌은 최초로 면 기저귀를 대량생산하였습니다. 이후 면 기저귀를 위한 다양한 물품이 등장하였습니다. 1910년대에는 고무로 된 유아용 바지, 1930년대에는 뜨개로 만든 울 바지가 방수 커버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1940년에는 안전핀 대신 버클을 사용한 기저귀가 발명되었습니다. 1947년에는 기저귀를 고정하는 금속 똑닥단추가 나왔습니다. 천기저귀를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다양한 부재료가 나타난 것이지요. 이런 아이템은 지금도 천기저귀를 쓰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답니다.

기저귀 커버. 왼쪽의 아이보릿빛 바지가 울 커버입니다(출처: wikipedia.org)

1949년, 미국의 주부 마리온 도노반은 젖은 기저귀 때문에 침대 시트까지 빨아야하는 것에 좌절을 느끼며, 샤워커튼을 잘라 방수 커버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마리온은 방수 기저귀 커버의 특허를 1만 달러에 팝니다. 예나 지금이나, 육아를 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부지런한 엄마들이 있네요. 마리온이 만든 방수 기저귀 커버는 현대화된 천기저귀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네모난 천 형태가 아닌, 아이의 신체에 맞춰 똑딱 단추로 채우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어요. 이러한 형태의 천기저귀는 요즘도 일명 ‘팬티형 천기저귀’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마리온 도노반이 발명한 방수 커버(출처: pinterest.com)
 현대식 일체형(팬티형) 기저귀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천 기저귀를 세탁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식민지 시기의 미국에서는 물이 부족하고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빨래는 일주일에 1-2회 할 수 있었습니다. 주부들은 젖은 기저귀를 헹구고 짜서 세탁일이 될 때까지 널어두었습니다. 일부는 세탁하기 전에 말라서 그냥 다시 쓰기도 했구요.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여성들은 전쟁터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해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킹맘에겐 젖은 기저귀를 직접 세탁할 시간도, 체력도 모자랐을 겁니다.


"세탁하는 여인" Jean-Baptiste-Siméon Chardin (1730s) 출처: http://www.larsdatter.com/18c/laundry.html


이에 천기저귀를 수거해가서 세탁하고 다시 가정에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생겨났습니다. 이 서비스는 각 가정에서 수거한 기저귀를 분리된 통에 보관하고, 세제를 사용해 11번의 세탁 사이클을 거쳐 세탁하고 마지막에는 끓는 물에서 소독했습니다. 꽤나 철저한 과정을 거친 것 같아요. 1938년에는 전국 천기저귀 세탁 서비스 연합이 발족했다니, 기저귀 세탁 서비스가 큰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천기저귀가 대중적이지 않고 가정용 세탁기와 건조기도 많이 보급되었지만, 이런 서비스가 지자체 차원에서 시범 사업으로 시도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40년-50년대 미국에서는 세탁기가 보급되고 긴 기저귀를 사용하는 형태로 미리 접어놓은 프리폴드 기저귀가 도입되어 천기저귀 사용이 보다 용이해졌어요.     


1989년, 캘리포니아의 천기저귀 세탁 공장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들(출처: https://calisphere.org/item/5606f9098eb5f4e8f0371ae1390044


그러나 천기저귀를 사용하기 어려워진 여건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전쟁이었어요. 세계대전이 지속되면서 기저귀로 사용할 면이 부족해졌습니다. 이에 1942년, 스웨덴에서 최초의 일회용 기저귀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셀룰로스 시트를 흡수체로 사용한 것이예요. 미국에서도 1948년, 존슨앤존슨에서 소비자용 일회용 기저귀를 출시했습니다. 이 시기에 나온 일회용 기저귀는 티슈 페이퍼로 된 흡수층이 가운데에 있고 외관은 플라스틱화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일회용 기저귀를 흔히 ‘종이 기저귀’라고 부르는데, 흡수층으로 펄프를 사용하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어쨌거나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일회용 기저귀는 특별한 상황에서, 혹은 부유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사치품으로 인식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소비자용 일회용 기저귀 시장은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했습니다. 셀룰로스 섬유를 사용해 흡수율이 높아진 기저귀가 도입되었고, 기저귀용도로 적합한 다양한 원단이 개발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프록터 앤 갬블(P&G) 사에서 기저귀 브랜드 ‘팸퍼스’를 출시하였습니다. 이는 종이 대신 셀룰로스 펄프 코어를 흡수체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킴벌리 클라크 사에서는 기저귀 브랜드 ‘하기스’를 런칭했어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일회용 기저귀 시장은 점점 커졌고, 소비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가격도 저렴해졌습니다. 허리밴드 양쪽에 접착 테이프가 달린 형태의 일회용 기저귀도 이 때 나왔습니다.


초창기의 팸퍼스 광고 및 상품 이미지(출처: 팸퍼스 공식 홈페이지)


1980년대는 일회용 기저귀가 한 단계 도약을 한 시기입니다. 1981년에는 초고흡수체 폴리머 코어를 사용해 기존보다 50배나 많은 양의 액체를 흡수할 수 있는 기저귀 특허가 나왔습니다. 덕분에 일회용 기저귀는 이전에 비해 부피가 반으로 줄었습니다. 아기의 몸에 잘 맞도록 허리에 고무 밴드를 넣은 스타일의 일회용 기저귀가 출시되었습니다. 1984년에는 당시 인기 캐릭터였던 양배추 인형이 기저귀에 등장했어요. 현재는 다양한 월령대를 대상으로 여러 형태와 디자인의 일회용 기저귀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양배추 인형이 인쇄된 기저귀(사진 출처: pinterest.com)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보면 일회용이든 다회용이든,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기저귀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면 기저귀는 200여 년, 일회용 기저귀는 7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따라 기저귀의 소재나 모양 등은 조금씩 달라져 왔어요. 면 기저귀를 주로 썼던 시기에 나왔던 방수 커버나 세탁 서비스, 그리고 다양한 흡수체를 사용한 일회용 기저귀 등을 보면 사소하지만 좀더 편리함을 원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기저귀를 발전시키는데 큰 동력이 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시적인 사회 상황도 반영이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회용 기저귀가 발명되었고, 기술의 발전으로 일회용 기저귀가 점점 상용화되었어요. 


그러면 지금은 어떤 시점일까요? 일회용 기저귀를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로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천기저귀 사용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뭘 그리 깊이 생각해?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일회용 써~!’

할 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좋습니다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기저귀 또한 변화의 한 시점에 있는 것이지,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사소해보이지만 반복해서 불편하게 여겨지거나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이게 정말 최선일까?’ 

를 생각해보고,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들이 모여, 앞으로 기저귀의 역사를 바꿀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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