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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May 18. 2022

3화: 천기저귀'도' 씁니다

천기저귀를 쓴다고 주변에 이야기하면 


‘세상에, 그 불편한 걸 어떻게 써?’ 

하는 반응을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젖은 일회용 기저귀는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던지기 바쁜데, 그걸 일일이 빨아서 다시 쓰다니요? 유난스럽고 독한 사람으로 비춰질 듯했어요.


천기저귀 사용을 특별하게 보는 시선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천기저귀를 쓰는 사람은 천기저귀만 쓸 것이다.’


라는 거예요. 이 잘못된 전제는 천기저귀를 쓰는 사람을 특별한 부류로 바라보게 하고, 천기저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선뜻 천기저귀를 쓰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천기저귀를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기저귀만 쓰지 않습니다. 20년 전의 연구이긴 하지만, 한 연구에서 밝혔듯이 천기저귀를 쓴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대개 낮시간에 천기저귀를 많이 쓰고, 외출 또는 밤잠 때에는 일회용 기저귀를 쓴다고 했어요. 5년 전 한국소비자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일회용 기저귀만 사용한다는 응답이 94.7%, 일회용 기저귀와 천 기저귀를 혼용한다는 응답이 5%, 천 기저귀만 사용한다는 응답은 0.3%였어요. 즉, 천기저귀 라이프의 실제는 ‘천기저귀 100%’가 아니라, ‘일회용 기저귀 100%가 아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천기저귀를 시작했을 때에는, 일회용 기저귀에 대한 의존도 여전히 높았어요. 아기가 천기저귀를 차고 낮잠을 자다가 기저귀가 젖으면 깨서 울까봐 일부러 일회용 기저귀를 쓴 때도 있었어요. 친구 집에 놀러갈 때엔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못할 것 같아서 일회용을 쓰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자 천기저귀 사용이 손에 익었지만, 그렇다고 천기저귀만 쓰진 않았어요. 돌 이후에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일정 시간을 정해두고 그 때만 기저귀를 교체하니까, 집에서처럼 자주 갈아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천기저귀를 쓴다고 해도, 일회용 기저귀가 떨어지지 않게 사놓아야 했어요.


천기저귀도 나름의 활약을 했어요. 아이는 집에 있을 땐 거의 하루종일 천기저귀를 차고 있었어요. 저도 기저귀 확인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젖으면 금방 갈아줄 수 있었어요. 특히 여름에는 일회용 기저귀가 더 답답해보였기에, 천기저귀가 있어 마음이 놓였어요. 여름에는 그냥 벗겨놓는 때도 많았지만요. 천기저귀가 손에 익자, 차츰 일회용 기저귀가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어요. 이전에는 일회용 기저귀가 떨어질 무렵이 되면 바로 주문을 했는데, 이제는

‘천기저귀가 있으니까 괜찮아.’

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어요.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 때에도 천기저귀를 채운 때도 있었습니다.

후쿠오카 근처 실바니안 가든에서 21개월의 첫째. 이 때도 천기저귀를 차고 있었어요.

즉, 천기저귀를 쓰기 시작한 후 저희 집에서는 일회용과 천 기저귀의 사용 비율만 달라졌을 뿐, 두 가지가 공존해 왔어요. 둘째 육아 때는 좀 더 천 기저귀 사용 비율이 높았지만, 일회용을 완전히 안 쓴 건 아니예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서른 초반까지, 여러 레벨을 오가는 채식주의자로 살았어요. 동물의 복지와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채식을 하고 싶었답니다. 생선, 달걀과 유제품까지 섭취하는 페스코-오보 베지테리언으로 살았던 때가 가장 많았어요. 대학 졸업 이후, 동물 보호 운동에 깊이 빠져 비건이 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일을 하면서 상사와 식사할 때엔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면 

‘나는 줏대 없이 고기를 먹었다 안 먹었다, 뭐 하는 건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어요. 


어느 날, 테드 강연을 들었어요. 우리가 일주일에 고기를 4-5번 먹을 것을 1-2회로 줄인다면, 훨씬 동물과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강연을 듣는데 깨달음이 왔어요. 꼭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어요!! 아예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혹시나 고기를 먹게 되면 자책하며 괴로워합니다. 반면 일주일에 고기 먹는 날을 예전보다 조금 줄이는 건 훨씬 부담이 덜 느껴지고, 실천하기도 쉬워요.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모이면, 소수의 완벽한 채식주의자만큼이나 지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살다 보면 고기를 자주 먹을 때도 있고, 덜 먹을 때도 있어요. 사람 사는 건 복잡한 일이라, 고기를 아예 안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도 있어요. 천기저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천기저귀가 더 손에 갈 때도 있지만, 반드시 천기저귀만 써야한다고 생각하면 불편하고 답답하게 여겨집니다. 아예 시작하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육아에서 그렇게 고수해야 하는 아이템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어렵구요. 천기저귀를 쓰고 싶지만 엄마가 아파서, 어린이집에 보내야 해서, 혹은 여러 다른 이유로 일회용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천 기저귀 또한 선택지로 남겨두면 어떨까요? 하루에 쓰는 기저귀 10장 중에 1장을 천 기저귀를 쓴다면, 이러한 노력이 하루이틀 쌓이고 여러 명이 모여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에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집 기저귀 정리함의 모습입니다. 천 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가 모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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