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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May 18. 2022

1화: 기저귀 차는 시기의 아이를 돌본다는 것

기저귀를 뗀 어린 시절 이후, 30여 년이 되도록 기저귀는 저의 생활과 아무 상관이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첫 아이의 출산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저는 처음으로 기저귀를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저귀를 사야 하는 걸까?’

앞으로 아이가 기저귀를 떼게 될 때까지, 만 2년 정도는 기저귀를 쭈욱 써야할 예정이었습니다. 브랜드 별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무엇을 보고 구입을 결정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각 회사들은 모두 자기 기저귀가 가장 좋다고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맘카페에 물어보면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 추천을 해주었지만, 일관된 결론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그냥 조카가 쓰던 브랜드의 기저귀로 정했습니다.




기저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찰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기저귀는 그냥 치약과 휴지처럼,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고 쓰는 생필품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기저귀의 의미를 깊이 따지고 학술적인 접근을 하는 건 과해 보였어요. 어떤 기저귀를 쓴다고 해서 특별히 아이의 발달에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기저귀는 육아 생활 중에 한 연출 소품으로 우리 인생에 지나가는 아이템 정도입니다. 그저 기저귀가 젖으면 갈아주고, 기저귀를 모아서 버리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시기가 오고, 그러면 기저귀는 또 잊혀지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글에서 연출 소품인 기저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보려고 합니다. 기저귀는 똥오줌을 받아내는 용도의 물건이예요. 누구나 그저 기저귀를 빨리 떼기만을 바라며,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기저귀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가 기저귀를 찬다는 것은, 기본적인 배변 활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제가 아는 인류학자 선생님은 인간의 자립 조건으로 ‘밥, 말, 똥’ 세 가지를 제시하더군요. 이 세 가지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 다 컸다고 볼 수 있다네요. 한 단어 세 가지로 간결하면서도 위트 있는 설명이었어요. 저는 그 중에서도 ‘똥’에 눈길이 갔어요. 인간은 동물과 달리 아무 곳에서나 배변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동물들은 천적에게 띄지 않고자 자신의 배변활동을 조절하긴 하지만, 인간은 문화적인 차원에서 배변 활동을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런가 하면, 동물에 비해서 배변을 스스로 조절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동물의 아기는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알아서 적당한 장소에서 배변을 하고 처리하는 법을 익힙니다. 반면 인간의 아기는 빨라도 첫 돌이 지나야 배변을 가리게 됩니다. 


배변 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동물에 비해 태어나서 성숙하는 속도가 느립니다. 언젠가 기린의 출산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아기 기린이 태어나자마자 서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인간의 아기는 그렇게 스스로 서려면 만 1년이 필요한데 말이예요. 인간은 동물에 비해 두뇌가 커서, 엄마 뱃속에서 다 성숙해서 나오려면 거의 3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게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미성숙한 상태로 낳아서, 오랜 기간 엄마가 돌본다고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배변 활동도 동물에 비해 더 오랜 기간 들여 성숙되는 것이구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서는 아기 기린(출처: www.zooborns.com)

만 3년이라. 흔히 ‘태어나서 3년은 엄마가 키워라’ 라는 멘트가 떠오르는데요. 사실 꼭 엄마일 필요는 없지만, 누구든지 아이에게 밀착해서 돌봄이 필요한 시기이기는 합니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시묘 살이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 3년은 부모님이 자신을 낳고 키워준 기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3년간은 아이가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밑바탕이 형성되는 때라 볼 수 있지요. 그러면 출생 후 만 3년 간, 아이는 어떻게 성장할까요? 

신체 발달 측면을 살펴보면, 대략 태어나서 두 돌까지 일생 중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 돌이 되면 몸무게는 출생시에 비해 3배, 키는 1.5배 증가합니다. 또한 세 돌 전에 20개의 젖니가 모두 나게 되지요. 대근육과 소근육 또한 발달하게 됩니다. 즉 태어나서 세 돌까지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급속한 성장을 보이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22개월 무렵의 첫째입니다

인지 발달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나타납니다. 구성주의 인지발달 이론가인 장 피아제는 출생부터 만2세까지의 시기를 감각운동기라 보았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는 감각기관과 운동 기능을 통해 세상을 알아갑니다. 출생 이후에는 빨기, 잡기 등 반사적인 행동에 의존하지만, 경험의 반복을 통해 18-24개월 경에는 눈 앞에 없는 사물이나 사건을 정신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만큼 성장합니다. 또한 아이는 첫 돌 경 분명하게 이해하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두 돌 즈음에는 두 개 이상의 단어를 연결해 사용하고 뚜렷한 발음을 낼 수 있습니다. 

18개월 무렵의 첫째예요. 천기저귀를 차고 있어요.

사회정서 발달 차원에서도 큰 도약이 있는 시기입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주양육자와 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것인데요. 생후 100일 경부터 아이는 친숙한 사람과 낯선 사람을 구분하지만,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낯선 사람을 보면 불안해하고, 주양육자와 떨어지는 것에 저항합니다. 이러한 분리불안은 9-10개월 경에 최고조에 달하지요. 그러다가 주양육자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친숙한 환경에서는 엄마와 쉽게 분리되고 주위 환경을 탐색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아이는 자의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신생아는 자기 자신과 환경을 분리하지 못하지만 점차 커감에 따라 자신을 환경 또는 양육자와 분리된 독립된 개체로 자신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가운데 배변 훈련, 즉 아이가 기저귀 대신 변기에서 용변을 보게 되는 것은 대개 18개월에서 세 돌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기저귀가 젖었을 때 불편하다고 인식하며 배변을 통제할 수 있다면 배변 훈련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을 8단계로 제시하였습니다. 태어나서 만 1년간은 양육자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거나, 혹은 불신을 갖게 되는 시기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만 1-3세의 시기에는 스스로 배변 활동을 통제함으로써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는 때입니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태어난 당시에는 연약하고 미숙해보이던 인간의 아이는 첫 3년을 지나면서 스스로 걷고, 말하고, 세상을 탐색하는 독립된 한 인간으로 살아갈 기본 준비를 마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저귀는 배변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만큼 신체가 성숙할 때까지, 아이의 똥과 오줌을 받아내 주는 물건이구요. 기저귀를 차는 어린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기본적인 생리 현상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린 아기를 온전히 보살펴야 하는 특별한 시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27개월 무렵의 첫째입니다(이로부터 세 달 뒤, 30개월에 기저귀를 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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