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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Sep 05. 2022

6화: 천기저귀를 주위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기에게 처음 천기저귀를 채우고 아기가 기저귀에 대변을 봤을 때, 남편의 당황하던 표정이 기억나요. 


“이거 이제 어떻게 하지? 버릴까?”


저는 천기저귀 세탁법을 미리 알아두었기 때문에 남편만큼 당황스럽진 않았어요. 그러나 그 이전 일회용 기저귀처럼, 아기의 대변이 최대한 제 손에 안 묻게 돌돌 말아 버리면 끝이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선명한 얼룩을 제 손으로 과연 지울 수 있을까 싶었지요. 

남편을 비롯해서, 천기저귀를 쓴다고 하면 주위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어요. 천기저귀를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천기저귀를 쓴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천기저귀를 반대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친정엄마였어요. 첫째를 낳고 50일쯤 되었을 때 남편이 일주일 간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어요. 친정 부모님께서 육아를 도와주러 오셨죠. 한참 천기저귀 커버를 만드는 저를 보며 친정 엄마는 달갑지 않은 표정을 하셨어요. 말은 안해도


‘그 힘든 걸 뭐하려 하나...’ 


하는 마음이 딱 전해졌어요. 맞는 말이기도 해요. 출산 후 50일이면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특히나 예민한 아이를 키우느라 밤이고 낮이고 잠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어요. 천기저귀를 그것도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다니, 그 시간에 잠이라도 좀더 자는게 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아무리 힘들어보여도 하고 싶은 건 스스로 해봐야 하는 성격이고, 이런 성격을 잘 아는 엄마는 그냥 내버려두셨어요. 


그 이후에도, 엄마는 아이를 볼 때마다 한 번씩

‘천기저귀는 너무 두꺼워서 아기 허리가 불편해 보인다. 요즘 일회용 기저귀는 얇고 좋던데.’

하고 탐탁지 않게 보셨어요. 그 이후로도, 친정에 갈때마다 엄마는 수시로, 아이가 기저귀 뗄 때까지도 계속 '천기저귀는 불편하고 일회용 기저귀가 좋다'고 한 마디씩 하셨어요.

    

친정 엄마만큼 천기저귀를 대놓고 반대하진 않지만, 시어머니도 천기저귀에 대한 기억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으셨어요. 시어머니께서 종종 저희 집에 오시면, 항상 빨래 너는 것을 도와주셔요. 저는 늘 혼자 빨래 너는 것이 익숙해서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시어머니께는 한 장의 빨래라도 더 빨리 널고 얼른 일을 마치는 것이 중요해 보였어요. 첫째가 100일 좀 넘었을 때, 시어머님께서 아이를 봐주러 온 적이 있었어요. 젖은 천기저귀가 나오자마자 시어머님은 바로 가지고가서 손빨래를 해 건조대에 널어놓으셨어요. 


“어머님, 기저귀 손빨래 하지 마세요. 모아놨다가 나중에 세탁기에 돌리면 돼요.”


이렇게 말씀드려도 대부분 바로바로 손빨래를 해서 널어놓으셨어요. 처음에는


‘세탁기에 돌리면 된다고 말씀드리는데도 왜 굳이 손빨래를 하시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마 어머님 세대 분들에게 기저귀란 애초에 세탁기에 돌린다는 건 잘 생각할 수 없는 듯했어요. 그 당시는 세탁기가 집집마다 있지도 않았잖아요? 저도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엄마가 빨래판에 옷가지를 문질러 빨고 빨래방망이로 두드리던 장면이 떠올라요. 그렇게 빨래는 고된 일이기에 어머니 세대에서 천기저귀란 그저 나오는 즉시 처리해야 하는 마인드를 갖고 계신 것 같았어요. 옛날에 천기저귀 쓴 때를 회상하며


“난 연년생을 키웠잖니. 한 명이 기저귀를 떼니 얼마나 좋았던지 몰라.” 


하셨어요. 어머니 세대에서 천기저귀란 그저 힘겹고 지겨운 가사노동을 상징하는 아이템인 듯 했어요. 시어머니는 천기저귀 뿐만 아니라 가제 손수건 몇 장, 아기가 목욕할 때 물기를 닦은 수건도 다 손으로 빨아 널어놓고 가셨어요. 저라면 그냥 다 모아놨다가 세탁기에 한 번 돌렸을 거예요. 아무리 지금은 세탁기가 있어도, 세탁기 없이 한동안 빨래를 해오신 시어머니께 이런 가벼운 종류의 빨래는 얼른 해치워야 하는 걸로 여겨지는 듯해요.      


1969년에 출시된 국내 최초의 세탁기 광고


어머니들 뿐만이 아니었어요. 아이가 6개월 무렵, 아이돌봄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잠깐씩 아이를 봐주셨어요. 천기저귀를 보시며 


“어머 이거 우리 애들 어릴 때도 썼던건데, 젊은 사람이 장하네요~” 


하며, 감사하게도 천기저귀를 적극적으로 써 주셨어요. 그런데 퇴근하실 때 보니까 천기저귀 몇 장이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거예요. 


“선생님, 천기저귀 빨래는 하지 마세요~ 이건 제가 모아서 세탁기에 돌릴거예요.”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면서도, 몇 번이나 더 천기저귀 빨래를 해놓고 가셨어요. 천기저귀는 손으로 빠는 습관이 몸에 배여있으신 듯했어요. 아마 그 분께도 천기저귀란 그때 그때 처리하는 것이지, 세탁기에까지 돌리는 물건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산후도우미나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때 천기저귀를 쓴다고 얘기하면 업체에서 아예 처음부터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이것도 일부는 세탁에 대한 관점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천기저귀라고 하면 세탁 과정까지 자동으로 따라붙는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제가 산후도우미라도 같은 돈을 받는데 굳이 손빨래까지 해야한다면 반갑지 않을 거예요. 일회용 기저귀를 쓰듯이, 천기저귀를 갈아서 그냥 모아두기만 하면 된다고 분명히 밝힌다면, 굳이 천기저귀라고 더 업무가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무리 세탁기가 빨래를 해준다고 해도, 일회용보다 천기저귀를 쓰면 손이 가야 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세탁기에 젖은 천기저귀를 넣기 전, 대변 기저귀의 경우 애벌 빨래가 필요해요. 소변 기저귀는 손으로 애벌할 필요는 없지만 세탁기를 돌리기 전에 먼저 헹굼을 해주어야 하구요. 또 세탁이 끝난 기저귀를 널어야 하고, 건조가 된 기저귀를 접어야 합니다. 일회용을 쓰면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지요. 이 과정은 직접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느끼는 난이도가 다른 듯해요. 어머님 세대에서는 모든 빨래를 손으로 직접 해야했기 때문에 부담을 크게 느끼는 듯해요. 같은 방식으로 천기저귀를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주변에서 듣거나 다른 경로로 형성된 천기저귀에 대한 인식은 어머니 세대의 경우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천기저귀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미리 선을 긋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박수근(1954). '빨래터에서'


천기저귀를 쓰는 동안 매일, 그리고 가끔 격일로 세탁기를 돌리고 있어요. 


‘매일 세탁기를 돌린다고? 관리비 많이 나오면 어쩌지?’


출산 전에는 일주일에 1-2번 세탁을 했기 때문에 늘어난 세탁 회수가 부담이었어요. 하지만 천기저귀를 쓰기 전후로 관리비를 비교해보니, 한달에 6-7천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어요. 일회용 기저귀를 사는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커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리 세탁기로 빤다고 해도, 똥오줌이 묻은 기저귀를 그냥 던져넣고 빨 수는 없어요. 소변 기저귀는 모았다가 세탁 전, 수위를 가장 낮게 해서 헹굼으로 한 번 돌려요. 대변 기저귀는 대변을 변기에 버리고 손빨래로 얼룩을 어느정도 없애야 해요. 기저귀 개수에 따라 다르지만 매일 애벌빨래에 드는 시간은 10-20분 사이예요. 빨래를 널고 접는 시간도 30분 정도는 들구요. 이 모든 과정이 육아를 하면서 짬짬이 하는거라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물론 저에게는 조금 힘든 정도이지만, 같은 일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힘듦의 정도는 다르겠지요. 어쨌거나, 천기저귀를 어떻게 세탁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막연히 불편해보여서 싫다고 하면, 생각보다 세탁이 어렵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충분히 쓸 만해요.      




최근에 첫째와 함께 ‘시냇물을 건넌 망아지’라는 동화를 읽었어요. 망아지는 엄마 심부름을 하러 가다가 시냇물을 마주합니다. 건널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망아지에게 황소가 말했어요.

‘이 물은 종아리까지밖에 오지 않는단다. 충분히 건널 수 있지.’

그 때 다람쥐가 오더니 말했어요.

‘얘, 망아지야. 여기 물이 얼마나 깊은데? 내 친구도 얼마전 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

망아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풀죽어 집으로 옵니다. 그런 망아지에게 엄마는

‘얘야, 남의 말만 듣지 말고 네가 직접 건너보렴.’

이라고 해요. 다시 시냇가로 가 발을 담근 망아지는, 시냇물이 깊지도 얕지도 않은 걸 알게 되었고 무사히 시냇물을 건너갔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렵고 불편해보이는 천기저귀이지만, 누군가는 별로 힘들어보이지 않고 쓰기도 해요.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막연히 불편해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생각보다 금방 되기도 한답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 천기저귀를 잘 쓰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요. 직접 천기저귀를 써본 사람을 보면, 

‘저렇게 할거면 나도 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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