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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달리기, 제민천의 밤

달리기는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한다

by JM Lee

어제, 오랜만에 달렸습니다.
몇 년 만인지, 아니 어쩌면 십 년 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뛰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나는 달렸습니다. 제민천을 따라, 금강이 만나는 그 지점까지.


점심 무렵,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다녀오고 약을 먹고 잠시 누웠습니다.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다시 외출을 했고, 문득 공주 제민천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 가서 '고가네 칼국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공주로 향했습니다.


이런 충동,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제민천 주변을 산책하다가, 떡볶이와 순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추억처럼 느껴졌죠. 맛은 솔직히 별로였지만, 그 시시한 간식조차도 어딘가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민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걷다가,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뛰고 싶었습니다.
정말 갑자기, 정말 강하게.


제민천 다리 .jpg


그래서 달렸습니다.
몸이 기억해낸 리듬에 맞춰,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금강이 흐르는 곳까지.
밤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그 감각.
내 온몸의 세포가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했습니다.


공산성.jpg

어릴 적 나는 달리기를 싫어했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아프고, 발이 헛디뎌질 것 같았죠.


하지만 1994년, 미군부대 카투사 시절부터 달리기는 나에게 다른 의미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들과 어깨를 맞대고, 리듬에 맞춰 군가를 부르며 함께 뛰는 경험은 어느새 달리기에 매력을 부여했습니다.


이라크 아르빌에 근무할 때는 더더욱 달리기에 매달렸습니다.
답답한 심정에, 몇 시간이고, 공원 안을 미친 듯이 돌았습니다.
달리기만이 그곳에서 숨 쉴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나는 달리기를 잊고 지냈습니다.
일에 치이고, 책임에 짓눌리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다 보니
몸은 방치됐고, 마음도 무뎌졌습니다.


그러다 어제, 다시 달린 겁니다.
밤의 제민천, 공산성의 불빛, 금강 너머로 펼쳐진 공주의 야경.
그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달리다 보니, 아내와 함께했던 그 길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함께 걸었었죠.
지금은 각자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금강 제민천 공산성.jpg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파트 헬스장에 내려가 다시 몸을 풀었습니다.
스트레칭과 간단한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내 몸을, 내 마음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생각합니다.
일하기 싫은 저녁, 무기력한 밤, 의미 없는 유튜브 영상 대신
차를 몰고 제민천까지 가서 달리는 삶.


그게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할지도 모른다고요.


� 에필로그


달리기는 내 인생의 리셋 버튼 같았습니다.
지친 마음을 정화하고, 잊고 지낸 내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줬습니다.


제민천의 바람, 공산성의 불빛, 그리고 금강을 가로지르며 느꼈던 자유.
그 밤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제민천의 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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