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창립 이래 1호

by 이해하나

회사 창립 이래 1호라는 타이틀을, 저는 꽤 여러 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으레 좋은 성과나 새로운 시도에 붙여지던 그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오늘은 전혀 다른 의미로 제게 붙었습니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고 나간 사례, 그것이 오늘의 제 타이틀입니다.


회의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기에는 설명이 부족한 순간들이었습니다. 말은 오갔으나 정작 정리되지 않은 날 선 감정들이 몸 안에서 먼저 반응했습니다. 심장이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습니다. 숨은 쉬어지는데 어딘가 분명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서늘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운전대를 잡고 정문을 나서는데, 문득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덮쳐왔습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습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수화기 너머 구급대원의 목소리에 어눌하게 대답하며 저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반장님, 그리고 평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던 팀장님. 두 분 모두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닙니다. 살아계실 때는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던 그분들의 말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쓸쓸한 표정과 뒷모습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봅니다.




저 멀리 구급차가 회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이렌 소리에 정신을 겨우 붙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든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걱정이었습니다. '아, 저기로 들어가면 안 되는데… 아파서 실려 가는 모습이 보이면 혹시 잘리는 건 아닐까.'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밥벌이를 걱정하는 제 자신이 지금 생각하면 참 서글프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이 진심이었습니다.


경영팀장님이 동행해 주셨고, 저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격한 통증과 긴장 속에서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지만, 말없이 눈물을 닦아주시던 손길은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해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심장 전문의가 없어 전원을 가야 한다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응급실 뺑뺑이'의 당사자가 된 것입니다.


대기하는 시간 동안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습니다. 두 달 가까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잠을 설치던 시간들, 고혈압 약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잠이 더 오지 않아 끊어버렸던 미련한 선택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조금 괜찮아진 것 같은데, 정말 생사가 오가는 위급한 사람들에게 가야 할 구급차를 제가 붙잡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구급대원에게 말했습니다.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가서 약을 타고, 이후 대학병원 진료를 받겠다고요. 구급대원은 심전도를 다시 확인하고는 제 의견을 받아 주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서웠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구나. 의사가 없어서,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현실이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 격한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구급대원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했습니다.


경영팀장님은 끝까지 제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첫 직장의 트라우마 때문에 늘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때 팀장님이 웃으며 해주신 말씀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이런 걱정하는 사람 10명만 있어도 회사는 훨씬 좋아질 텐데요. 핵심인 재니까 그런 걱정 말고, 지금은 몸부터 추스르세요.”


그 말 한마디에 맺혀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습니다. 만약 여기서 제가 잘못된다면, 제 가족들은, 부모님은, 동생들은…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심장이 다시 조여 오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습니다.


휴가를 내고 집로 내려왔습니다. 아내에게 "나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걱정할까 봐 끝내 입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빠 안색이 안 좋다며 작은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아빠 안마해 주려고 적은 기혈에 좋은 혈자리와 마사지 방법.'
나중에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삐뚤빼뚤 적어 내려간 그 쪽지를 보며, 저는 삼키고 있던 울음을 속으로 터뜨렸습니다.


살아야겠습니다. 건강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대비하면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살아왔다는 것. 그 불안 속에서 정작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과 가족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걱정들부터 하나씩 내려놓아야겠습니다.


회사 창립 이래 1호라는 타이틀이 또 하나 늘었지만, 이 기록만큼은 다시는 갱신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밤은 푹 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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