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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신발

by 이해하나

걷다 보니,
예전에 아내에게 했던 신발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신발을 2년이나 신었다.
헤지지도 않았고, 버릴 이유도 없었다.
그냥 신을 수 있으니, 계속 신었다.


그런데 아내는 8개월쯤 되면 신발을 바꿨다.
그래서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오래 신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자주 바꿔?”


그때 아내는 그저 조용히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멋을 부리는 건 줄 알았고,
신발이 여러 켤레쯤은 있는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나뿐인 신발로, 매일 신고 다녔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걷다 보니 알겠다.


많이 걷는 사람의 신발은 빨리 닳는다.
그리고 왜 걷는지도, 결국 신발에 남는다는 것을...


나는 그냥 걷고 싶어서 걷는다.
시간이 나면, 생각을 정리하려고 걷는다.


하지만 아내는 살림을 아끼기 위해,
내 벌이에 대해 원망 한마디 없이,
비가 와도, 아이들과 함께,
필요해서, 걸어야 하니까 걸었다.


그 신발은 제때 바꾼 게 아니었다.
참고 또 참다가, 더는 신을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바꿨던 거였다.


그 걷기는 고단한 하루하루의 반복이었고,
사랑과 책임의 발걸음이었다.


나는 2년을 신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덜 걸었을 뿐이었다.


그 조용한 웃음 속엔
말보다 깊은 진심이 숨어 있었다.


미안하다.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서.
그리고 고맙다.
묵묵히, 그렇게 걸어줘서.


걷다 보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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