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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Aug 24. 2020

'에코슈머' 동네 장보기

귀찮음, 단순 가성비 소비를 넘어

집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 생협 매장(울림두레생협 성산점)이 있다. 나는 20대 대학생 시절부터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소화불량이 심해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컸다. 거기에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사회적인 관심도 있었다.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욕구와 필요, 친환경 농수산물을 일구는 생산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소비자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이다. 친환경, 로컬(우리밀 등) 농수산물과 가공품을 조합에서 구매해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조합원)에 공급한다. 생협에서는 상품을 ‘생활재’로 표현한다. 수익창출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에, 상업적인 유기농 매장에 비해 중간 마진이 적다. 


따라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안전하고 질 좋은 친환경 생활재를 구할 수 있다. 나아가 그저 ‘가격 합리성’ 보다는, 지구를 생각하며 땅을 일구는 생산자들을 지원하는 관계성을 강조한다. 어려운 시기에는 ‘수요와 공급’ 곡선과 다르게 제값을 주기도 한다. 역으로 가격 폭등과 같은 소비자에 불리한 파고가 있을 땐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관리한다.


1분 거리 편의점 VS 3분 마트 VS 7분 거리 생협


의미가 좋아도 귀찮을 때도 있다. 집에서 1분 거리에 편의점이 두어 개씩 있는 동네다. 라면 정도는 편의점에서 사면 안 될까. 어차피 생협 것은 (기성 제품에 길들여진 입맛으로는) 맛도 밍밍한데. 감자칩, 과자 등의 간식거리는 편의점에서 사자.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면 고기, 야채 등 웬만한 식료품도 다 있다. 오늘은 거기서 사다가 해 먹자. 사람 몸과 마음은 간사하다. 7분 거리 사실 별 거 아닌데, 바로 앞에 1분, 3분 거리에도 대안이 있으니 몇 걸음 더 이동하는 것도 귀찮아진다. 사람 입맛도 간사해서, 유기농, 친환경, ‘착한’ 것들만 당기는 것도 아니다. 길들여진 입맛과 습관이 같이 장보러 다니는 아내에게 말한다.

(나도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 성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녀에 비하면 말만 떠드는 사람이다.)


“오늘은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주말 간식과 끼니를 때우고 해 먹도록 하자.” 

그녀는 단칼에 거절한다. “안 돼!”


슬쩍 생협이 아닌 곳에서 사다 놓은 식재료를 볼 때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린다. 까다로운 그녀를 향해 오늘은 나도 성이 나서 한소리 친다. 가까운 데 이용하자, 불량식품 사 먹는 것도 아니고,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왜 언짢게 그래.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나는 꽤 신경 써서 소비하고 있는 거 아니야? 너무 빡빡하게 그러지 말자. 그녀는 오늘도 긴 설명 없이 단호하다. “난 생협 꺼 아니면 안 먹을 거야.” 


좋은 소비,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소비를 하자는데 나 역시 백 번 동의한다. 그것이 우리 몸을, 가족 건강을, 농가를, 지구와 생명을 위하고 살리는 일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에게 그녀 말을 거부할 명분이 별로 없음이 감지된다. 언행불일치. 특별히 ‘3분 이내’로 사 와야 하는 급한 상황이거나 생협에 없는 품목이 아니라면. 결국 오늘도 꼬리를 내린다. “그래 생협으로 가자”


장바구니를 채우고 나오면서는 사실 기분이 좋다. 


몇 발걸음 더 잘 걸어왔다는 생각이다. 이곳은 지역화폐 결제도 가능하기에, 그것으로 계산한다. 외식을 줄인다면, 살짝 비싼 친환경 식재료로 밥을 해 먹는 게 결정적으로 가계에 부담은 아니다. 1+1 제품들을 사서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많다. 꼭 필요한 물건, 재료들만 사서 알차게 먹으면 된다. 그리고 지갑을 연 것이 다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돈 내고 소비만 했을 뿐인데, 지역과 환경을 살리는데 작은 움직임 하나를 보태는 ‘가치 있는 실천’에 동참한 셈이다. 


매력적인 재활용 가게에서 ‘득템’


생협에서 나오면 서있는 땅은 성산동이다. 길 건너 80m 정도 걸어가면 다시 서교동이다. 성산동 골목으로 들어가 걷다가 곧바로 이어지는 좁고 아기자기한 서교동 골목길을 느긋하게 걸어간다. 망원역으로 향하는 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자주 들르는 재활용 매장으로 향한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서 가까워 망원점이지만, 여기는 아직 서교동이다. 조금 걸어가면 망원동이 시작되기에, 여기도 망원과 서교가 교차하는 어귀와 가까운 지점이긴 하다. 들어서면 ‘Better Than New’(새 것 보다 낫다) 문구가 크게 쓰여 있다. 한쪽 벽면에는 “지금까지 총 11만 6천 건 중고 거래를 통해 9억 8백만 원에 달하는 자원을 재순환하였으며 약 20톤의 생활 폐기물을 줄였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이런 문장도. “쓸모가 남은 물건을 적절한 보상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은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 있던 바로 그! 물건이 됩니다.”


헌 것, 잉여품, 누가 썼던 물건들이라고 해서 허접한 느낌이 드는 건 결코 아니다. 500원, 1000원, 이렇게 형식적인 값만 받는 것도 아니다. 이곳은 중고품들을 잘 정리하고 선별하여 내놓는다. 이 매장은 배치나 진열 등 큐레이션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모양새다. 그렇기에 ‘매력 있는 헌 것’들을 소비자들에게 제시한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 만나러 망원역 가는 길에 일상적으로 들러 매장 문을 열어 들어가 보게끔 만드는 곳이랄까. 혹시 오늘은 어떤 좋은 물건을 괜찮은 가격에 얻어갈 수 있을까. 물론 살 것이 없어서 구경만 하고 그냥 나올 때도 많다. 그러나 ‘아이쇼핑’만 해도 쾌적하고 즐거운 곳이다.


그녀는 원피스를 좋아한다. 오늘은 노란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나 보다. 탈의실 가서 입어보고 전신 거울을 바라보더니 흡족한 표정이다. 나도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든다. '취향' 저격하는 원피스 오늘도 득템!(여기서 몇 개째더라, 5개는 넘은 거 같은데). 나는 여름날 시원한 반바지와 티셔츠를 본다. 튀지 않고 깔끔하면서 어딜 가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옷을 고른다. 재미없는 성격 그대로다. 결제와 함께 오늘도 버려지는 물건을 하나 구했다. 새 것과 같은 헌 옷을 ‘득템’함과 동시에 환경을 망치는 쓰레기를 줄였다.

(아쉽게도 이 가게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영업을 종료했다. 코로나19가 세차게 휩쓸고 간 동네, ‘임대’ 문구만 덩그러니 쓸쓸하게 붙은 자주 드나들던 매장 모습에 못내 안타까운 감정이 밀려올 뿐이다.)



여기서도 지역화폐 ‘모아’로 구매! 오늘 간 매장 모두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공동체 가게’들이다(제로페이 등 정부에서 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는 매달 10만 원씩 ‘모아’로 환전해 ‘공동체 가게'(망원시장, 생협 등을 포함해 각종 자영업 매장까지 다양하다)에서 소비한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아닌 지역 소상공인들과 ‘좋은 소비’를 바라는 주민들이 만나는 매개다. 소비를 통한 우리의 돈이 거대 기업, 얼굴 없는 자본으로 지나치게 쏠려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내로 순환하도록, 지역경제를 살리고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움직임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설파한 한 생태주의자(슈마허) 말의 실천이다.


사실 별로 어렵지 않다. 거창한 행동이 아닌 잘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도시는 좋든 싫든 소비의 공간이고 스스로를 ‘소비 인간’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번 사는 인생, 하나둘씩 소비패턴을 우리와 미래세대를 위해, 내 몸과 공동체와 지구를 위해 바꿔보는 건 어떨까. 이것들이 쌓이면 좋은 습관으로, 그리고 주민들의 좋은 소비습관은 이 엄청난 기후생태위기의 시대에서 지구를 살려 나가는 밀알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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