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지 11
일요일의 텃밭엔 항상 남편과 강아지 루비를 데리고 나선다. 루비는 몰티즈치고는 뚱뚱해서 6킬로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자랑한다. 2킬로대가 기본인 몰티즈, 4킬로를 넘어가면 뚱티즈, 6킬로쯤 되는 왕티즈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일이 있다. 그 이후 가족들은 루비더러 뚱티즈도 아닌 왕티즈라고 놀렸는데, 다니는 동물 병원의 수의사는 늘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시켜야 한다고 주의하라고 하곤 했다.
루비는 산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논쟁처럼, 루비가 살이 쪄서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것인지, 움직이기를 싫어해서 살이 찐 건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루비는 산책 좋아하는 다른 개들과 달라 집을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강아지다.
그 루비를 데리고 남편과 천천히 텃밭으로 향했다. 5월 중순의 햇살은 이미 여름에 가깝다. 거리엔 반소매 옷을 입은 사람을 흔하게 본다. 이제 팔에도 선 스틱을 바르고, 모자까지 쓰고서야 집을 나서는 계절이다.
텃밭에 물을 주고, 17번 텃밭에도 물을 주어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일주일간 여행가셨다고 해서 대신 물주기로 했어.”
“보통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주세요?”
며칠 전 텃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근처 텃밭 주인이 말을 건넸었다. 나는 그것이 텃밭 물주기를 궁금해하는 것인 줄 알고, 처음엔 메일 주다가 지금은 하루건너 주기도 하고 들쑥날쑥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분이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저기…. 그럼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일주일간 여행을 가는데요. 텃밭에 물주실 때 저희 밭에도 물 좀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
나는 흔쾌히 그러마 했다. 그게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 잊지 않고 우리 밭 물주며 그 댁의 17번 밭에도 물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밭을 확인할 겸 구경을 했다.
초로의 부인이었는데 그녀의 밭에는 고추, 갓, 부추, 감자 등이 심어 있었다. 특히 감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한참 들여다봤는데 그녀가 웃었다.
“감자예요. 우리 손녀가 감자를 너무 좋아해서 몇 줄기 심었어요. ”
나는 감자잎이 그렇게 생긴 것을 처음 알았다. 먹는 감자는 늘 땅속에 있는 것이니 고구마순처럼 달리 요리를 해 먹는 것도 아닌 감자잎을 볼 일은 없었다. 손녀가 감자를 좋아해 그것을 텃밭에 심었다는 그녀의 표정은 참 편안해 보였다.
들여다보니 부추가 제법 자라 있었다. 나 역시도 텃밭에 부추와 쪽파를 심었는데 상추나 가지, 고추 자라는 것에 비하면 너무 더디게 자라서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고 하니 그녀는 내게 쪽파를 파종했는지 모종을 심었는지 물었다. 모종을 심었다는 내 말에 그녀는 끄덕끄덕했다.
“쪽파는 모종보다 씨를 뿌리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부추는 웬만하면 잘 자라던데 이상하네요.”
나 역시도 쪽파나 부추가 더디게 자란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긴 한데, 내가 심은 모종은 더뎌도 너무 더뎌서 처음 모종 상태에서 더 자란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죽지도 않은 채 그저 모종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형상이었다. 그녀의 부추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키였으니 걱정되기도, 한숨이 나기도, 부럽기도 한 마음이었다. 여전히 자라지 않는 나의 부추와 쪽파를 걱정하다가 17번 밭에 잘 자라고 있는 부추를 다시 한번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돌아섰다.
17번 텃밭 주인이 여행을 갔다는 말끝에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부부 역시도 여행을 좋아해서 코로나 이전에는 참 자주 다녔다. 코로나 동안에도 국내 이곳저곳을 매주 다녔고, 올해의 여행계획도 몇 건이 있음에도 17번 텃밭 주인이 부럽다고 웃었다.
“은퇴하면 우리도 명절이나 연휴 말고 비행깃값 싼 비수기에 갑시다. 급할 것도 없으니 직항 말고 두어 번 환승해가면서 세월아 네월아 다니고...”
젊었을 때는 젊음이 좋다. 나이 들어가면서도 역시 젊음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듦이 꼭 서글픈 것만도 아니다. 나이가 들고나서 갖게 되는 여유도 마음의 안정도 있다. 젊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젊었을 때는 젊은 패기로 매사가 급하다면,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인생의 가을로 접어든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늘 자신에게 말한다. 지금을, 오늘을 잘 살아내자. 오늘이 쌓여 한 계절이, 그리고 인생이 되겠지. 그러니 결승선을 저 멀리 두고 목표지점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인생이 아니라 지금 선 자리에서 가끔 눈을 옆으로 돌려 풍경도 보면서 천천히 걷자. 이렇게 바람과 햇살을 느낄 줄 아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이 정도면 괜찮게 살고 있는 거 아냐?”
남편이 말했다. 맞다.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퍽 괜찮은 인생인 것이 맞다. 남편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텃밭을 둘러봤다. 텃밭의 계절은 한창 반짝반짝 푸름이 가득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