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텃밭일지 16

by 전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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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이 거의 없다시피 한 환경에서 자란 우리 자매는 결혼 이후에도 각자 외둥이를 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 역시 번다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서 언니는 미국에서, 나는 한국에서 각자의 식구들과의 삶을 영위할 뿐이다.

이런 나름의 관계가 확장되는 경우는 일 년에 한 번쯤 언니가 귀국할 때이다. 늘 세 식구였던 집에 언니가 합류한다. 몇 년에 한 번은 조카나 형부가 함께 오기도 한다. 몇 주간 집에는 식구가 늘어나고, 흥겨운 분위기가 된다.


조카는 4년 전 사관학교 입학 때 한국에 다녀갔다.

4년이라는 세월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것이어서, 그 누구도 같은 모습으로 4년이란 세월을 얼굴에 담지 않는다. 누구에겐 즐거운 일이 가득한, 또 누구에겐 비참하고 힘들었을, 그런가 하면 그 누구에겐 희망찬 계단을 오르는 삶이었겠으나 그 반대로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4년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4년 전만 해도 어린티가 나던 조카는 팬데믹의 광풍 속에서도 무사히 생도 시절을 보내고, 이제 임관을 앞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리 역시 이런저런 다사다난함이 없지 않았으나 건강하고 행복한 얼굴로 맞이할 수 있었으니 우리들의 4년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른은 나이가 들고, 아이는 어른이 되는 것이 또한 세월이다. 몇 해 전과 또 다른, 외둥이로 자란 사촌 남매를 보면서 그 시간의 이치를 새삼 실감했다. 나는 나의 텃밭 자랑을 할 겸 두 녀석을 텃밭으로 내몰았다.

“가서 텃밭에 물주고, 상추랑 깻잎 따와. 내일 아침 샌드위치에 상추 넣어 먹자.”

아이들을 따라 텃밭을 구경나긴 언니가 사진을 보내왔다. 쪼그리고 앉아 사이좋게 상추를 뜯고 있는 녀석들의 한순간이 프레임 속에 남았다. 웃음이 났는데, 한편으론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도 오래 기억할 한순간이 그 안에 있었다.


며칠 후면 언니와 조카는 다시 자기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언니는 캘리포니아로, 임관하는 조카는 샌프란시스코로. 그렇게 다들 뿔뿔이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은 멀고, 우리나라의 동해는 그 나라의 서해가 된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있는 듯 옆에 있는 듯 그렇게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엄마가 한국 와서 한 달 살기 할까?”

언니가 아들에게 떠보듯 물었을 때 조카가 좋은 생각이라며 했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엄마가 이모랑 있을 때 제일 행복해 보여.”


형제는 때로 투덕거린다. 남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처럼, 남보다 배는 더 서운할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형제라서 그런 것일 테다. 애초에 기준이 다른 것이다. 남과 내 핏줄이 어떻게 동일선상에 놓이겠는가.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함께 있을 때 제일 행복해 보이는 것이 또한 형제이다. 그 마음이, 그 감정이 숨길 수 없이 우리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는가 싶어 놀랐고, 그것을 알아본 조카의 말에도 감동했다.


아이들이 뜯어 온 상추를 씻으며 곰곰이 지난 며칠을 되돌려 생각해봤다. 나 역시, 최근 이렇게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하루를 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조카의 말처럼, 나도 정말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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