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지 14
상추가 일년내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며칠에 한 번씩 상추를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쑥쑥 크지만, 언제까지 상추를 키울 수가 있는 걸까 궁금했다.
이웃 텃밭 할머니께 여쭤보았더니 상추는 장마 전까지만 키우는 것이라 하셨다. 장마가 오고 나면 다 뽑아내고 시금치, 배추. 무 등을 심으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아하, 그렇구나. 초보 텃밭 농부는 한가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가지는 쑥쑥 자라고 있다. 물을 주고 있는 내게 지나가던 다른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가지는 큰 잎을 따주어야 열매가 잘 맺는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가지잎은 굉장히 크다. 그 큰 잎을 별달리 먹는 것도 아니니 반짝반짝 윤이 나는 보라색 가지가 열리길 기다리는 일뿐인데 그 큰 가지잎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큰 잎을 몇 장 뜯어냈다. 굵고 억센 가지 줄기엔 따끔거리는 가시 비슷한 것이 벌써 돋아나 있었다. 내 손바닥보다도 더 큰 가지잎 여러 장을 뜯어내고 나니 가려져 있던 가지꽃이 드러났다. 나는 가지꽃이 보라색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먹는 가지처럼 꽃도 같은 보라색이라니 신기한일이다.
처음에 텃밭을 일구며 가지를 심겠다고 하니 식구들 모두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가지라고?”
“그 맛없는 것은 왜?”
다들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만 가지를 좋아한다. 가지를 볶은 것도 좋아하고 가지튀김도 좋아한다. 특히 돼지고기볶음에 가지를 함께 넣어 볶아먹으면 별미라 좋아한다.
가지라는 것이 사실 좋아하는 이가 의외로 적고,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비인기 종목의 채소이다. 어린 시절, 특히나 육식파였던 우리 가족에게도 가지는 환영받는 채소가 아니었다. 어느 날 엄마가 돼지고기볶음을 하며 가지를 함께 볶았는데 그 맛이 훌륭했다. 그것을 드신 아빠도 엄마도 모두 만족했다. 나도 맛있어서 그 이후는 돼지고기볶음을 먹을 때 가지가 들어있지 않으면 아쉬워했다.
가지를 키워서 볶아 먹고, 돼지고기볶음에도 넣어 먹어야지 했다. 비록 식구들은 가지를 그리 환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가지의 큰 잎을 솎아내며 보라색 이쁘고 귀여운 가지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보라색 꽃이 진 자리에 작은 꼬투리가 맺히고, 이어 보라색 가지가 열리는 풍경을 상상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진한 보라색 가지가 열려 햇빛에 빛나는 어느 오전이 그 상상 속에 있다.
가지를 따서 씻는다. 경쾌한 소리를 내는 나무 도마에 올려 칼질을 하고, 양념한 돼지고기와 함께 살짝 볶아낸 가지를 저녁 식탁에 올린다. 가족들은 가지가 별로라고 했지만, 막상 돼지고기와 함께 볶아낸 가지는 맛있게 먹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딸은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 문득 선명한 보라색 가지를 만나면 그 저녁 식탁의 한때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불현듯 그 저녁 식탁의 풍경을 떠올리는 그 어느 날엔 딸 역시 지금의 나처럼 멀리 두고 온 시절과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해 주려나.
꽃을 덮은 가지잎 몇 장을 뜯어내고 햇빛을 받는 보라색 가지꽃을 한참 바라보다 돌아섰다. 집으로 천천히 걸어 돌아오며 나는 오래전 그 어느 날의 식탁을 떠올렸다. 내 부모와 함께 가지볶음을 먹던 그 한때를.